총구 앞의 팝아트, 앤디 워홀과 발레리 솔라나스의 비극
1968년 6월 3일, 뉴욕의 심장부이자 현대 예술의 성지였던 ‘팩토리’는 비명과 총성이 울려퍼졌죠. 팝아트의 황제 앤디 워홀은 그가 창조한 낙원에서 한 여성이 당긴 방아쇠에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그를 저격한 이는 작가인 발레리 솔라나스(Valerie Solanas)였습니다.

팩토리의 이방인, 발레리 솔라나스
발레리 솔라나스는 남성 말살 선언서인 <SCUM Manifesto>를 집필한 급진적 인물이었습니다. 그녀는 워홀의 주변을 맴돌며 자신의 연극 대본인 <Up Your Ass>를 제작해 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했습니다. 워홀은 그녀의 대본이 너무나 외설적이고 공격적이라고 판단했고, 어느 날 그녀가 건넨 대본을 분실하게 됩니다.
워홀에게 그것은 수많은 해프닝 중 하나였을지 모르나, 솔라나스에게 그것은 거대한 권력이 약자의 목소리를 짓밟는 행위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는 내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을 지배했다”
사건 당일, 솔라나스는 워홀의 사무실로 찾아가 세 발의 총탄을 발사했습니다. 마지막 한 발이 워홀의 복부를 관통하며 그의 내부 장기를 처참하게 손상시켰습니다. 워홀은 병원으로 후송되어 임상적 사망 판정까지 받았으나, 5시간에 걸친 대수술 끝에 기적적으로 생존했습니다.
솔라나스는 체포된 직후“워홀은 내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을 지배했다”며 범행 동기를 밝혔습니다. 그녀의 눈에 워홀은 단순히 예술가가 아니라, 사람들의 영혼을 통제하는 차가운 착취자로 보였던 것입니다.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고독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지만, 워홀의 삶은 이전과 같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평생 코르셋을 착용해 장기를 지탱해야 했으며, 팩토리는 더 이상 개방적인 예술 아지트가 아닌 보안 요원이 상주하는 폐쇄적인 공간으로 변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워홀의 작품 세계는 더욱 정적이고 죽음에 천착하는 경향을 띄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흉터를 사진 작가 리처드 애버던의 카메라 앞에 드러내며, 화려한 팝아트의 이면에 숨겨진 연약함을 보여주기도 했죠.

비극이 남긴 잔상
발레리 솔라나스는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이 사건은 훗날 ‘예술과 광기’, ‘권력과 소외’라는 주제로 수없이 회자되었습니다. 캔버스 뒤에서 은둔했던 워홀에게 솔라나스의 총탄은 그가 그토록 피하고 싶어 했던 ‘날 것의 현실’이자, 그를 영원히 죽음의 공포 속에 가둔 족쇄가 되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