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을 넘어 공간으로,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회화는 죽었다. 이제 공간이 시작된다.”
194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가 감행한 ‘캔버스 찢기’는 미술사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습니다. 단순히 캔버스를 훼손한 행위가 어떻게 현대 미술의 가장 위대한 전환점이 되었는지, 그 예술사적 의의를 세 가지 핵심 관점으로 분석합니다.

공간주의(Spatialism)의 탄생
루치오 폰타나는 1946년 ‘백색 선언(Manifesto Blanco)’을 통해 공간주의(Spazialismo)를 천명했습니다. 이전까지의 서양 미술은 2차원 평면 위에 색채와 원근법을 동원하여 3차원적인 ‘환영(Illusion)’을 만드는 데 집착했습니다.
폰타나는 이 지점에서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습니다. “왜 가짜 입체를 그리는가? 실제 공간을 예술에 끌어들여야 하지 않는가?” 그가 캔버스에 구멍을 내거나(Buchi) 칼자국을 낸(Tagli) 행위는 평면 위에 갇혀 있던 회화를 해방시켜 실제 물리적 공간(Real Space)과 결합시킨 사건입니다. 이는 회화가 ‘이미지를 보여주는 창’에서 ‘물질적 실체’로 변화했음을 의미합니다.
‘회화의 살해’를 통한 매체 개념의 확장
미술사학자들은 폰타나의 행위를 ‘회화의 살해’라고 부릅니다. 이는 캔버스라는 전통적인 매체가 가진 권위를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파괴는 곧 확장이었습니다.
- 조각과 회화의 경계 붕괴: 캔버스를 찢음으로써 회화는 입체적인 속성을 획득했습니다. 이는 ‘그려진 것’과 ‘만들어진 것’ 사이의 경계를 허물었으며, 이후 미니멀리즘과 설치 미술이 등장하는 데 결정적인 교두보 역할을 했습니다.
- 물질성의 강조: 물감의 색채보다 캔버스라는 천의 조직, 그리고 그 뒤에 존재하는 어둠(공간)이라는 ‘물질’ 그 자체에 집중하게 만들었습니다.

캔버스 너머의 ‘무한(Infinite)’과 숭고미
폰타나의 칼자국은 단순히 물리적인 틈이 아닙니다. 그는 그 틈새를 통해 ‘제4의 차원’ 혹은 ‘우주적 공간’을 갈구했습니다.
당시는 인류가 우주 진출을 꿈꾸던 시대였습니다. 폰타나는 캔버스에 낸 구멍을 통해 관객이 무한한 우주의 깊이를 느끼길 원했습니다. 찢어진 틈 사이로 비치는 어두운 공간은 인간이 감히 가늠할 수 없는 ‘무한’을 상징하며, 이는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선 현대적 의미의 ‘숭고(The Sublime)’를 구현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행위 예술(Performance Art)의 선구자
폰타나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물로서의 캔버스뿐만 아니라, 그것을 찢는 ‘행위(Gesture)’ 그 자체에 있습니다.
단 한 번의 정교한 칼질을 위해 그는 수없이 명상하며 정신을 집중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예술가의 신체적 행위가 작품의 본질이 되는 ‘액션 페인팅’과 맞닿아 있으며, 이후 1960년대 등장하는 해프닝(Happening)과 퍼포먼스 아트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Editor’s Note: 루치오 폰타나의 작품은 오늘날 캔버스라는 물리적 제약을 넘어 디지털 공간, 가상 현실 등 현대 미술이 탐구하는 새로운 차원의 공간성에도 여전히 강력한 영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