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캔버스-크리스토 자바체프(Christo Javacheff)
2020년 5월 31일, 뉴욕 자택에서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크리스토 자바체프(Christo Javacheff). 그러나 그의 작품은 여전히 전 세계 도시와 자연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는 건축과 환경,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는 예술을 창조한 혁명가였습니다.
불가리아에서 세계로: 억압에서 자유로
1935년 불가리아 가브로보에서 태어난 크리스토는 공산주의 체제의 억압 속에서 예술적 자유를 갈망하며 1956년 빈으로 탈출하였습니다. 파리에 정착한 그는 잔느-클로드(Jeanne-Claude Denat de Guillebon)를 만나 예술적·인생적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둘의 만남은 단순한 협업을 넘어, 세상을 덮고 감싸는 새로운 차원의 예술을 만들어낸 기폭제였습니다.

포장 예술의 혁명: 도시와 자연을 감싸다
크리스토와 잔느-클로드는 ‘포장’이라는 개념을 확장하며 전례 없는 스케일의 프로젝트를 실행했습니다. 일반적인 예술작품은 캔버스 위에서 머물지만, 크리스토의 캔버스는 도시 전체, 그리고 자연 그 자체였습니다.
- 퐁네프 다리(1985, 프랑스): 파리의 가장 오래된 다리를 황금빛 폴리아미드 천으로 감싸며 역사적 랜드마크를 완전히 새롭게 조명.
- 베를린 국회의사당(1995, 독일): 냉전의 상징이었던 이 건물을 은빛 천으로 덮어, 통일 이후 새로운 의미를 부여.
- 둘러싸인 섬들(1983, 미국 마이애미): 분홍색 천으로 열한 개의 섬을 감싸며 인공과 자연의 경계를 허물어버림.
이 프로젝트들은 예술이 단순한 시각적 경험을 넘어 공간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음을 증명했습니다.



기술과 예술의 경이로운 결합
크리스토의 작품은 단순한 ‘포장’이 아니라 공학, 디자인, 수학, 환경 과학이 결합된 초대형 프로젝트였습니다.
- 모든 프로젝트는 수년, 때로는 수십 년간의 협상과 기술적 연구를 필요로 했습니다.
- 천의 질감과 색, 강도는 특수 제작된 재료로, 날씨와 바람, 구조적 안정성을 철저히 계산하여 결정되었습니다.
- 재정 지원은 완전히 독립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크리스토는 그림과 드로잉을 판매해 프로젝트 비용을 조달했으며, 어떤 후원도 받지 않았습니다. 완전한 예술적 자유를 유지하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습니다.
떠있는 부두: 인간이 물 위를 걷다
2016년, 이탈리아 이세오 호수 위에서 펼쳐진 ‘떠있는 부두(The Floating Piers)’ 프로젝트는 예술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어버렸습니다. 3km 길이의 황금빛 부두가 물 위를 떠다니며, 관객들에게 마치 물 위를 걷는 듯한 환상을 제공했습니다. 16일간 120만 명 이상이 찾았으며, 이는 크리스토의 작품이 대중과 얼마나 강렬하게 소통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미완의 꿈: 개선문을 감싸라
크리스토가 생전에 가장 실현하고 싶었던 프로젝트 중 하나는 파리 개선문을 감싸는 작업이었습니다. 1962년부터 구상한 이 프로젝트는 그의 사후 2021년, 마침내 실현되었습니다. 푸른빛과 은색이 감도는 거대한 천으로 감싸진 개선문은, 마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거대한 조각 작품처럼 파리의 도심 한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이는 크리스토의 마지막 유산이자, 그가 남긴 영원한 메시지였습니다.
사라지는 예술의 의미
크리스토의 모든 작품은 한정된 시간 동안만 존재하고, 이후 철거되는 운명을 가졌습니다. 그는 영구적인 조각이나 건축물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존재하고 사라지는 예술이야말로 가장 강렬한 경험을 남긴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영원히 남을 것을 만드는 일보다, 사라질 것을 만드는 일이 훨씬 더 용기가 필요하다.”


그의 예술은 끝났는가?
아니요. 크리스토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작품들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의 철학과 도전 정신은 예술계를 넘어 도시 계획, 환경 디자인, 공공 공간 활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프로젝트, 개선문 포장과 함께 우리는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은 영원해야 하는가?”
그리고 크리스토의 작품이 우리에게 남긴 대답은 분명합니다.
“예술은 순간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야말로 영원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