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예술,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
점과 환각으로 뒤덮인 세계
화려한 색채와 끝없는 점들로 이루어진 그녀의 작품을 보면 마치 유쾌한 환상 속에 빠져드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 강렬한 이미지 뒤에는 깊은 어둠과 광기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녀의 예술은 단순한 미학적 탐구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자신을 집어삼키려는 환각과 싸우는 최후의 보루였습니다.
무한한 점, 광기의 시작
쿠사마가 어린 시절 처음으로 본 ‘점’은 단순한 문양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녀를 삼키는 공포였고, 끝없이 반복되는 환영이었습니다.
1929년 일본 나가노현에서 태어난 그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웠지만 정서적으로 빈곤을 겪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바람둥이 기질을 가진 아버지의 불륜을 염탐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아버지가 어디 가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소상히 보고하는 것은 어린 야요이에게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또한 가부장적 사회에서 감정 표현을 억제해오던 어머니는 야요이를 더욱 몰아붙이며 분노의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빨간 꽃무늬 식탁보를 바라보다가, 그녀는 갑자기 그것이 온 방을 뒤덮는 환각을 경험합니다.
7살부터는 제비꽃, 호박, 개 등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환청과 꽃에 사람 같은 얼굴이 있거나 주변 사물에 환하게 불이 켜지는 등의 환시를 보기 시작했고 합니다. 이는 조현병(schizophrenia)의 증상으로 의심되는 지점입니다. 과거 “정신분열병”으로 불리웠던 조현병은 주로 10대 후반에서 20대의 나이에 시작하여 만성적 경과를 보이는 정신적으로 혼란된 상태로, 현실과 현실이 아닌 것을 구별하는 능력의 약화를 유발하는 뇌 질환을 말합니다.
그녀가 보는 모든 것이 끝없이 이어지는 패턴으로 변해갔고, 그 순간부터 그녀는 자신의 세계를 점과 그물망으로 뒤덮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정신을 지키기 위한 생존 방식이었습니다.

호박, 그녀를 지켜준 유일한 존재
어머니에게 쫓겨 숨었던 창고 한구석, 거기서 그녀는 ‘호박’을 발견했습니다. 딱딱한 껍질, 울퉁불퉁한 돌기, 그리고 안에서부터 퍼져 나오는 기묘한 생명력. 그 순간, 호박은 그녀에게 채소가 아니라, 혼란스러운 세계 속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수많은 호박 작품을 만들었고, 이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습니다.
호박을 그릴 때만큼은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녀는 그것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보호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예술이 끝나는 순간 다시 불안과 자살 충동이 밀려왔다고 합니다.
![위로와 치유의 향연…쿠사마 야요이의 '땡땡이 호박' [아트 갤러리]](https://economist.co.kr/data/ecn/image/2023/03/06/ecn20230306000074.600x.0.jpeg)
뉴욕, 광기와 혁명의 도시
1957년, 그녀는 일본의 보수적인 예술계에서 탈출해 뉴욕으로 향합니다. 단돈 2000엔(현재 가치로 20달러 남짓)만 쥐고 미국 땅을 밟은 그녀는 단숨에 뉴욕 아방가르드의 중심으로 뛰어듭니다. 당시 미니멀리즘과 팝아트가 대두되던 시기, 그녀의 ‘무한한 점’과 강박적인 반복 패턴은 기존의 미술과 전혀 다른 충격을 선사했습니다.
그녀는 거리에서 알몸 퍼포먼스를 벌이고, 반전 메시지를 담은 누드 행진을 조직하며 급진적이고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그녀는 점을 찍는 행위를 ‘셀프 오블리터레이션(Self-Obliteration)’, 즉 ‘자기 소멸’이라 불렀습니다. 점을 무한히 찍으며 자신을 우주와 하나가 되게 만들고, 결국에는 사라지게 하는 것. 그것이 그녀의 예술이었습니다.

예술인가, 광기인가?
쿠사마는 뉴욕에서의 치열한 활동 끝에 정신적 한계를 맞이합니다. 결국 1973년, 그녀는 스스로 정신병원을 찾아가 입원했고, 이후 줄곧 병원에서 생활하며 창작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예술이 그녀를 살렸지만, 동시에 그녀를 끝없이 몰아세웠습니다. 점은 그녀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녀를 집어삼킨 존재였고, 그녀는 평생 점을 찍으며 그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그 점들 덕분에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고, 현대 미술의 가장 강렬한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나는 점을 찍으며 내 자신을 없애고, 다시 태어난다.”
쿠사마 야요이의 세계는 끝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점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