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규범을 비웃는 아방가르드, 플럭서스(Fluxus)

완벽한 비례의 조각, 화려한 색채의 캔버스, 그리고 질서 정연한 화성의 교향곡. 수백 년간 견고하게 쌓아 올려진 ‘고급 예술’의 성벽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유쾌하고도 파괴적인 균열을 맞이하게 됩니다. 전시장이 아닌 거리가 무대가 되고, 악기 대신 일상의 사물과 전자 기계가 내뿜는 소음이 예술로 격상되던 시대. 엄숙주의를 탈피하고 삶과 예술의 경계를 지워버린 아방가르드의 최전선에는 ‘흐름’이라는 뜻을 가진 거대한 예술 운동, 플럭서스(Fluxus)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Fluxus and the artwork multiple - Cardi Gallery
《플럭서스 국제 신음악 페스티벌(Fluxus Internationale Festspiele Neuester Musik)》참여 멤버

정형을 파괴한 아방가르드: 1962년 비스바덴의 신호탄

1962년 9월, 독일 비스바덴에서 열린 《플럭서스 국제 신음악 페스티벌(Fluxus Internationale Festspiele Neuester Musik)》은 현대미술사의 지각변동을 알리는 거대한 사건이었습니다. 조지 마키우나스(George Maciunas)를 중심으로 요제프 보이스, 존 케이지, 백남준 등 다국적 예술가들이 결집한 이 운동은 기존 예술의 모든 정형성을 부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지 마키우나스는 플럭서스의 명칭과 선언문을 고안한 설계자이자, 뉴욕 소호를 예술의 거리로 일군 ‘소호의 아버지’입니다. 그는 예술이 박물관을 벗어나 누구나 즐기는 일상의 놀이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죠. 이들은 조지 마키우나스의 지휘 아래 피아노를 도끼로 부수거나 넥타이를 가위로 자르는 과격한 퍼포먼스를 통해 ‘박제된 예술’에 작별을 고했습니다. 특히 녹음기와 신시사이저 같은 전자 기기를 활용해 전통 음악 문법에서 배제되었던 ‘소음’을 예술의 중심부로 끌어들인 점은 미디어 아트와 현대 음악의 지형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George: The Story of George Maciunas and Fluxus – Official Trailer
조지 마키우나스(George Maciunas)

플럭서스의 마스터피스 3선

플럭서스의 미학은 ‘예술은 곧 삶이며, 모든 소리는 음악이다’라는 명제 아래 구체화되었습니다. 이 철학이 응축된 세 가지 결정적 장면을 복기해 봅니다.

1. 존 케이지(John Cage) – <카트리지 뮤직(Cartridge Music)>(1960)

존 케이지는 우연성과 불확실성을 음악의 핵심 요소로 삼으며 현대 음악의 패러다임을 바꿨습니다. <카트리지 뮤직>은 소음이 예술로 승화되는 결정적 순간을 상징합니다. 그는 축음기의 카트리지에 레코드 바늘 대신 철사, 이쑤시개, 성냥개비 등 일상의 사물들을 꽂은 뒤, 이를 다양한 표면에 긁어 발생하는 마찰음을 앰프로 거대하게 증폭시켰습니다. 연주자의 자의적인 행위와 기계적 증폭이 결합하여 매번 전혀 다른 거친 소음을 뿜어내는 이 작품은, 정해진 악보를 따르는 전통적 연주의 틀을 완벽히 부수어버린 혁명이었습니다.

Cartridge Music, Solo For Voice 1 | 2012 | John Cage 100th Anniv. Countdown  Event

2. 백남준(Nam June Paik) – <음악의 전시: 전자 텔레비전>(1963)

플럭서스의 핵심 멤버였던 백남준은 ‘음악’의 개념을 시각적 영역으로 확장했습니다. 1963년 독일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첫 개인전에서 그는 13대의 낡은 텔레비전을 전시했습니다. 그는 TV 내부 회로를 조작하여 화면에 추상적인 선과 소음을 출력하게 했습니다. 이는 텔레비전을 일방적인 정보 전달 매체에서 관객과 상호작용하는 ‘시각적 음악’의 도구로 변모시킨 사건이었습니다. 기술의 차가운 물성에 선(禪)적인 사유와 소음의 미학을 이식한 이 작업은 비디오 아트의 창세기가 되었습니다.

Before Crypto Art there was Fluxus, the Ultimate Avant-Garde Movement of  the 60s

3.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 – <피아노를 위한 동질성(Homogeneous Infiltration for Grand Piano)>(1966)

독일 전위 예술의 거인 요제프 보이스는 플럭서스 운동을 통해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탐구했습니다. 그는 그랜드 피아노 전체를 회색 펠트 천으로 빈틈없이 감싸버렸습니다. 소리를 내야 하는 악기를 침묵하게 함으로써, 보이스는 ‘소리의 부재’를 통해 역설적으로 소음과 침묵의 긴장감을 극대화했습니다.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이 침묵하는 피아노는 인류의 고통과 치유, 그리고 소통의 단절을 상징하며 관객에게 강렬한 철학적 질문을 던졌습니다.

What Lies Beneath: Myth-maker Joseph Beuys hit all the right notes after  World War II | Irish Independent

논리와 미학: 플럭서스가 현대예술에서 가지는 결정적 의의

플럭서스가 단지 자극적인 퍼포먼스에 그치지 않고 현대예술의 근간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의의는 크게 세 가지 논리적 축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술의 존재론적 전환입니다. 플럭서스는 예술을 ‘물질적 결과물(Object)’에서 시간적 사건(Event)’으로 재정의했습니다. 영구히 보존되는 캔버스 대신, 사라져버리는 소음과 행위를 선택함으로써 예술의 가치를 소유가 아닌 체험의 영역으로 이동시켰습니다. 이는 이후 개념미술과 퍼포먼스 아트가 예술적 정당성을 획득하는 결정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Fluxus-Internationale Festspiele Neuester Musik | Staatsgalerie

둘째, 권위주의적 위계의 해체입니다. 수 세기 동안 서구 예술은 ‘천재적 작가’와 ‘수동적 관객’ 사이의 엄격한 경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플럭서스는 존 케이지의 ‘우연성’을 빌려 작가의 의도를 최소화하고, 관객의 현장 지각을 극대화했습니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고, 일상의 모든 행위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이들의 논리는 예술의 민주화를 이끌어낸 미학적 해방 선언이었습니다.

What Is Fluxus? | Artsy

셋째, 매체 통합적 사고(Intermedia)의 선구적 모델입니다. 플럭서스는 음악, 미술, 연극, 시의 경계를 허물며 ‘인터미디어’라는 개념을 주창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융복합 예술, 다원 예술의 시초가 되었으며, 특히 기술적 소음조차 예술적 질서 안으로 편입시킨 논리는 현대 미디어 아트가 기술의 도구화를 넘어 철학적 매체로 거듭나게 한 핵심 동력이었습니다.

삶이라는 거대한 앙상블

미학적인 관점에서 플럭서스는 완결된 미를 거부하고 불완전한 소음과 우연한 행위를 긍정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주변을 채우는 일상의 소음 역시 누군가에게는 가장 전위적인 교향곡일지 모릅니다. 플럭서스가 남긴 파괴적이고도 유쾌한 유산은 오늘날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어떤 흐름(Flux)으로 채워가고 있느냐고 말입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