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조장 형제의 극적 화해, 오아시스(Oasis)
맨체스터에서 울린 전설의 시작
1990년대 영국 록의 심장, 맨체스터에서 울려 퍼진 기타의 울림. 오아시스는 1991년, 잉글랜드 맨체스터에서 결성되며 브리팝의 전설적 장을 열었습니다. 리암 갤러거의 날카로운 보컬과 노엘 갤러거의 천재적 작곡 능력이 만난 순간, 음악계는 새로운 역사를 목격했습니다. 밴드의 이름 “Oasis”는 단순한 밴드명이 아니라, 젊음과 자유의 상징이었죠.
갤러거 형제는 영국 맨체스터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 아래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마약이나 범죄와 관련된 경험을 딱히 숨기지도 않으며, 데뷔 때부터 특유의 제멋대로인 성격과 직설적인 언행으로 논란이 된 적이 많았죠. 왕실이든, 선배 뮤지션이든 비판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태도와 특유의 시니컬하고 유머러스한 말솜씨 덕분에 그들을 좋아하는 팬들도 많았습니다. 특히 인터뷰 중에 리암이 내뱉은 “우린 x나 예전에 끝났어. 돈 때문에 하는 거지” 같은 말은 우리나라에서도 밈으로 만들어져 많이 알려졌죠.

브리팝을 뒤흔든 전성기
데뷔 앨범 Definitely Maybe(1994)의 폭발적 성공은 오아시스를 단숨에 브리팝의 아이콘으로 만들었습니다. 2집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1995)는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장이 팔리며, 영국 록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자리 잡았죠. 노엘의 정교한 작곡과 리암의 대담한 보컬이 만들어낸 선율은 당시 젊은이들의 심장을 뛰게 했고, 오아시스는 단순한 밴드를 넘어 문화적 현상이 되었습니다.
불과 데뷔 3년 차 밴드가 된 1996년, 2장의 앨범이 터뜨린 어마어마한 열풍으로 오아시스의 인기는 이미 하나의 사회현상이었습니다. 초대형 공연들을 연달아 성공시킨 오아시스는 1996년 8월 영국 공연계 ‘꿈의 무대’로 불리는 네브워스 페스티벌에서 콘서트를 펼쳤고, 이틀 동안의 공연에 하루 12만5000명씩 총 25만 명을 동원하며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티켓 예매를 시도한 인원은 무려 영국 인구의 5%인 285만 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죠.

형제의 긴장, 무대 위 드라마
이처럼 데뷔 이후 성공 가도를 달리던 오아시스의 커리어는 1997년이 지나면서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팀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던 노엘 갤러거와 리암 갤러거 형제 간의 갈등이 밴드 커리어에 큰 영향을 줬기 때문이죠.
2009년 파리 Rock en Seine 페스티벌 공연을 앞두고 발생한 격정적 언쟁은 밴드 해체로 이어졌습니다. 노엘은 성명에서 “세부 사항은 중요하지 않지만, 나와 내 가족, 친구, 동료들에 대한 언어적·폭력적 위협 수준이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리암은 자신의 음주 문제를 지적받았으나, “그것은 처음부터 나와 노엘의 방식이었고, 오아시스를 있게 한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조롱과 언쟁의 15년
2009년 8월, 노엘 갤러거가 공식적으로 밴드 탈퇴를 선언하며 오아시스는 사실상 해체되었습니다. 이후 노엘은 ‘노엘 갤러거스 하이 플라잉 버즈’로 개별 활동에 나섰고, 리암은 기존 오아시스 멤버들과 ‘비디 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2024년 8월 27일 전까지)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죠. 하지만 두 형제의 언쟁과 소송, 공개적 조롱은 팬들의 관심을 끊임없이 자극했습니다.
2010년 브릿 어워즈에서 리암은 단독으로 무대에 올라 노엘을 언급하지 않고 마이크와 상패를 관중에게 던졌고, 2011년 노엘의 결혼식에 리암이 초대받지 못하면서 갈등은 더욱 격화되었습니다. 리암은 인터뷰에서 “나는 차라리 내 밴드에 다시 들어가는 것보다 내 배설물을 먹는 편이 낫다”고 말하며 재결합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재결합의 암시와 배경
재결합 배경에는 형제 관계 회복과 팬들의 열망이 있었습니다. 2023년 말, 리암과 노엘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미묘한 신호를 주고받으며 팬들에게 암시했습니다. 노엘은 과거 공연 사진을 공유했고, 리암은 과거 가사 일부와 밴드 관련 캡션을 올리며 “재결합 가능성”을 암시했죠. 팬들은 이를 즉각 포착하며 소셜 미디어 상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노엘과 리암은 오랜 언쟁과 법적 공방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음악적 유산과 팬들의 기대를 고려하며 신중히 합의점을 찾았습니다. 결국, 2024년 발표된 “Oasis Live ’25 Tour”는 16년 만의 역사적 재결합을 성사시켰습니다.

재결합의 서막, 2025 투어
2025년 10월 21일 한국 내한 공연은 고양종합운동장에서 개최됩니다. 이 공연은 단순한 콘서트를 넘어, 브리팝과 1990년대 록 팬들에게 역사적 순간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기타의 울림과 보컬의 힘, 무대 위 존재감은 여전히 변함없는 위력을 보여주죠.
두 형제의 불화 속에서 탄생한 음악적 긴장, 전 세계를 강타한 멜로디, 시대를 초월한 명곡들은 여전히 젊은이들의 심장을 뛰게 합니다. 2025년 한국 공연은 단순한 귀환이 아닌, 한 시대의 전설이 현대와 만나는 순간입니다. 오아시스는 과거와 현재, 팬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꼭 들어야 할 5곡
- Wonderwall
영국에서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인지도를 지닌 곡이다. 스포티파이에서 무려 20억 회의 스트리밍을 넘기며 1990년대 곡 중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노래라는 대기록을 가지고 있다.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노래. - Live Forever
리암이 가장 좋아하는 오아시스 곡으로 꼽은 노래로, 노엘 역시 자신이 노래를 만들 때 기준이 되는 곡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어머니에게 보내는 밝고 희망적인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오아시스의 음악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노래로 꼽힌다. - Don’t Look Back in Anger
존 레넌의 ‘Imagine’을 연상시키는 피아노 인트로부터 비틀스에 대한 오마주가 느껴지는 이 노래는 특유의 위로를 주는 가사가 마음을 울리는 오아시스의 대표곡 중 하나다. 드물게 노엘이 보컬을 맡았는데, 곡의 정서와 아주 잘 어울린다는 평을 받았다. - Champagne Supernova
노엘도 의미를 모른다고 밝힌 만큼 가사에 대한 해석은 각기 다르지만,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알 수 없는 강렬한 감정을 이끌어내는 곡이다. 잔잔한 멜로디로 시작해 휘몰아치는 기타 연주로 감정을 끌어올리고 다시 되돌아오는 데 7분 28초를 활용한다. - Acquiesce
흔치 않은 노엘과 리암의 듀엣 송. 재결합 소식을 들은 팬들이 가장 많이 기대하는 무대 곡 중 하나일 것이다. 두 사람의 파트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것도 매력적이고, 30년 서사를 알고 들으면 둘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듯한 가사가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