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예술 한조각

Artist

당신은 얼마입니까? – 산티아고 시에라(Santiago Sierra)

전시장 한복판, 마약에 중독된 노숙자들이 일렬로 서서 등에 지워지지 않는 문신을 새깁니다. 그 대가로 그들이 받은 돈은 겨우 헤로인 한 봉지를 살 수 있는 값입니다. 관객들은 경악하며 ‘윤리’를 논하지만, 정작 이 비극적인 연출을 기획한 예술가는 무심하게 대답합니다. “이것이 당신들이 매일 방관하고 있는 세상의 진짜 모습이다.”

스페인 출신의 현대 미술가 산티아고 시에라(Santiago Sierra)는 오늘날 미술계에서 가장 위험하고도 논쟁적인 인물입니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관객에게 지독한 불편함과 죄책감을 안겨주며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사회적 구조와 노동의 가치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합니다.

Santiago Sierra's Tattoo Lines – Paying prostitutes with drugs (SFW)

결핍과 투쟁의 연대기

1966년 마드리드에서 태어난 시에라는 어린 시절부터 스페인의 정치적 격동과 경제적 불평등을 목격하며 자랐습니다. 마드리드 컴플루텐세 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한 후, 그는 90년대 초 멕시코시티로 이주하는데, 이 결정은 그의 예술 인생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됩니다.

멕시코시티라는 거대 도시가 품은 극단적인 빈곤, 부패, 그리고 처절한 생존 본능은 시에라에게 ‘노동’이 어떻게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지 목격하게 했습니다. 그는 미니멀리즘의 형식을 빌려오되, 그 차가운 기하학적 형태 안에 ‘살아있는 인간의 고통’을 집어넣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예술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행위가 아니라, 권력이 인간을 다루는 방식을 재현하는 ‘현장 검증’에 가까웠습니다.

Santiago Sierra's Dark Mofo Request Isn't His First Major Backlash

등 위에 새겨진 노예제

160cm의 선과 노동의 상품화

시에라를 세계적인 반열에 올린 동시에 가장 큰 비난의 화살을 받게 한 작품은 ‘헤로인 중독자 6명의 등 위에 문신한 160cm의 선(160cm Line Tattooed on 6 Paid People)’입니다. 그는 직업 없이 거리를 떠도는 청년 여섯 명을 1인당 30달러 정도에 고용했습니다. 작가는 그들을 일렬로 세워두고 등을 가로지르는 일직선 문신을 했죠. 그는 이후로도 세계 곳곳에서 문신을 한 적이 없고 할 생각도 없었지만, ‘돈을 받는다면 몸에 영원히 남을 문신을 하는 데 동의할 사람들’을 찾아 일직선을 새겼습니다. 

그는 사회적 안전망 밖으로 밀려난 이들에게 아주 적은 보상을 약속하고, 그들의 신체를 영구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를 예술로 포장했습니다. 대중은 “어떻게 인간의 고통을 이용할 수 있느냐”며 분노했지만, 시에라의 의도는 바로 그 지점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나이키 운동화를 신으며 동남아 아동 노동자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고, 저렴한 서비스 뒤에 숨겨진 감정 노동자의 눈물을 외면합니다. 시에라는 예술이라는 폐쇄적인 공간 안에 그 착취의 메커니즘을 그대로 가져다 놓음으로써, 우리가 일상적으로 향유하는 ‘저렴한 비용’이 사실 누군가의 ‘신체적 훼손’과 맞바꾼 것임을 증명했습니다.

Santiago Sierra's Tattoo Lines – Paying prostitutes with ...
Santiago Sierra's Tattoo Lines – Paying prostitutes with drugs (SFW)

한국의 맥락에서 본 노동과 존엄성

시에라의 파격적인 행보는 한국에서도 이어졌습니다. 2000년 부산비엔날레에서 그는 ‘미술관을 막기위해 고용된 68명의 사람들(68 People Paid to Block a Museum Entrance )’이라는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부산국제현대미술제(PICAF) 개막식에서 68명이 고용되어 행사장 정문 앞에 질서정연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이들은 3시간 동안 거의 움직이지 않고 같은 자리에 있었죠. 이들은 시간당 3,000원을 받았는데, 이는 당시 한국 최저임금인 1,500원의 두 배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이 임금은 해당 미술관 직원들이 하루 10시간 이상 출퇴근하며 12만원을 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죠. 하지만 이들은 ‘인간’이 아닌 시에라의 작업을 위한 오브제로 취급 받으며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퍼포먼스를 위해 고용된 사람 중 5명은 “나는 이 일을 하는 대가로 시간당 3,000원을 받고 있습니다”라고 적힌 영어와 한국어 팻말을 들고 있었습니다.

68 People Paid to Block a Museum Entrance » LiMac

국적이라는 이름의 바리케이드

베니스 비엔날레의 ‘벽’

2003년, 세계 최고 권위의 예술 축제인 베니스 비엔날레의 스페인관에서 시에라는 국가적 자부심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그는 화려한 전시장의 정문을 벽돌로 완전히 봉쇄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뒷문에는 무장 경비원을 배치한 뒤, ‘스페인 여권을 소지한 사람’만 입장을 허용했습니다. 여권이 없는 외국인들은 전시장 내부를 구경조차 할 수 없었고, 어렵게 들어간 스페인 국민들이 마주한 것은 텅 빈 공간과 먼지뿐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국가라는 경계가 어떻게 사람을 차별하고 배제하는지 시각화했습니다. ‘국적’이라는 우연한 운명이 누군가에게는 권력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장벽이 되는 현실을, 시에라는 예술 축제의 현장에서 가장 불쾌한 방식으로 재현해냈습니다.

The Controversial Art of Santiago Sierra | TheCollector

왜 ‘불편함’을 예술이라 부르는가?

시에라의 작품에 대한 비난은 늘 “예술가가 도덕적으로 우월하지 않다”는 점에 집중됩니다. 하지만 시에라는 스스로 성인(聖人)이 되기를 거부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이미 존재하는 문제를 시각화할 뿐이다. 예술가는 구원자가 아니라, 이 추악한 시스템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목격자여야 한다.”

그의 예술은 도덕적 가르침이나 위로를 주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가 누리는 평온한 일상이 타인의 희생과 저렴한 노동력 위에 위태롭게 세워져 있다는 사실을 ‘살을 에는 듯한 불쾌함’을 통해 각인시킵니다. 그의 작품 앞에 섰을 때 느껴지는 그 참을 수 없는 불쾌함과 분노는, 사실 우리 스스로가 이 거대한 착취 시스템의 공모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오는 자괴감일지도 모릅니다.

Santiago Sierra will soak British flag in blood of colonised peoples - The  Art Newspaper - International art news and events

시에라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인간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에 대해 가장 잔인하고도 정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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