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고요한 낙원, 네즈 미술관
도쿄의 번화한 오모테산도 거리 끝자락, 유리와 콘크리트의 현대적 건물들 사이로 들어서면 마치 다른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순간이 있습니다. 대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좁은 입구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도시의 소음이 점점 희미해지고, 이내 시적인 정적이 내려앉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곳이 바로 네즈 미술관(Nezu Museum)입니다.

자연과 건축이 하나로 호흡하는 공간
네즈 미술관은 원래 철도 재벌이자 미술품 수집가였던 네즈 가오이치로(根津嘉一郎)가 소장품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사설 미술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네즈 미술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건축과 자연이 공존하는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현대적이면서도 일본 전통의 미를 담은 이 건물은 세계적 건축가 구마 켄고(Kengo Kuma)의 손에서 재탄생했습니다. 그는 2006년 개관 리노베이션 당시, ‘보이지 않게 만드는 건축’을 목표로 설계했습니다. 그 결과, 유리와 대나무, 돌, 철을 섬세히 엮은 외관은 주변 자연과 경계 없이 스며듭니다. 길게 뻗은 기와 지붕, 부드러운 빛을 걸러내는 대나무 차양, 그리고 정원과 시선이 연결되는 유리 벽면은 도쿄 한복판에서 가장 조용한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일본 정원의 정수를 담은 숨겨진 낙원
네즈 미술관의 진정한 보물은 건물 안이 아니라 뒤편 정원에 있습니다. 약 17,000㎡(5,000평) 규모의 이 정원은 에도 시대 정원양식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공간으로, 연못, 돌길, 이끼, 다실, 석등, 그리고 계절마다 변하는 수목이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우러집니다.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푸른 단풍, 가을에는 불타는 듯한 단풍잎, 겨울에는 눈 덮인 이끼까지 — 사계절의 변화가 그대로 풍경화가 됩니다. 정원을 거닐다 보면, 자연스레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감각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 정원은 단순한 미적 요소를 넘어, ‘자연을 관조하는 일본적 미의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예술이 머무는 집, 그리고 자연의 미술관
미술관 내부에는 네즈 가문이 수집한 동아시아 고미술품 약 7,400여 점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대표작은 국보 ‘이리카가미 관음도(螺鈿観音像)’와 다도 관련 유물들입니다. 전시장은 의도적으로 어두운 조명 아래 배치되어, 관람객이 작품과 고요히 마주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그러나 관람 동선 곳곳에서 유리 너머로 정원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예술과 자연, 건축이 하나로 이어지는 완벽한 경험이 완성됩니다.

도쿄의 중심에서 ‘비움’을 체험하는 곳
네즈 미술관은 화려함 대신 절제와 여백의 미로 관람객을 사로잡습니다. 건물의 모든 요소가 ‘자연을 방해하지 않기 위한 장치’로 설계되어 있으며, 방문객은 그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명상적 평온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곳은 단순한 미술관이 아닙니다. 도쿄라는 거대한 도시의 리듬 속에서, 잠시 멈춰 숨을 고를 수 있는 정원 같은 예술의 쉼터입니다. 네즈 미술관은 ‘미술관을 걷는다’는 말의 의미를, 가장 고요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재정의한 공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