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탐방기①-잊혀진 씨앗에서 찾은 미래, 공주 ‘곡물집’
충남 공주 원도심, 봉황동의 고즈넉한 골목을 걷다 보면 낡은 주택들 사이로 정갈한 감각이 돋보이는 공간 하나를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토종 곡물’의 가치를 예술적 경험으로 승화시킨 로컬 브랜드, 곡물집(Grainsbe)입니다. 이곳은 단순한 F&B 공간을 넘어, 사라져가는 토종 종자를 통해 우리 삶의 지속 가능성과 미학을 탐구하는 거대한 실험실이자 갤러리입니다.

부부의 전문성이 빚어낸 완벽한 시너지
곡물집의 탄생 뒤에는 디자인과 브랜딩 전문가인 천재박 대표와 그의 든든한 파트너이자 아내인 김현정 이사가 있습니다. 서울에서의 화려한 커리어를 뒤로하고 공주에 정착한 이 부부는 각자의 강점을 결합해 ‘곡물집’이라는 독보적인 브랜드를 일구었습니다.
천재박 대표가 브랜드의 거시적인 철학을 설계하고 ‘어콜렉티브(A-Collective)’를 통해 창의적인 비전을 제시한다면, 김현정 이사는 그 비전이 현실에서 어떻게 고객의 오감과 닿을 수 있을지를 치밀하게 고민합니다.
두 사람은 단순히 사업을 위해 공주를 찾은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삶이 지속 가능한가’를 고민하던 부부는 공주의 느린 호흡에 매료되었고, 지역 농부들이 대를 이어 지켜온 ‘토종 씨앗’에서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오감을 깨우는 곡물의 미학
곡물집의 메뉴는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음식을 넘어 토종 곡물의 풍미를 탐구하는 ‘테이스팅 코스’와 같습니다.
곡물 드립 커피 (Grain Drip Coffee)는 곡물집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메뉴입니다. 엄선된 커피 원두에 등틔기콩, 아주까리밤콩, 선비잡이콩 등 이름조차 생소한 토종 곡물을 블렌딩했습니다. 커피의 산미 뒤에 따라오는 곡물의 묵직하고 구수한 뒷맛은 마치 잘 지은 밥의 단맛처럼 우아한 여운을 남깁니다.
그레인 스프레드 & 토스트는 토종 곡물을 베이스로 만든 스프레드는 인위적인 단맛을 걷어내고 곡물 본연의 담백함을 극대화했습니다. 갓 구운 빵에 곁들여지는 스프레드는 건강하면서도 깊은 풍미를 자랑하며, 미식가들 사이에서 반드시 맛봐야 할 시그니처로 꼽힙니다.

사유의 공간, 2층 ‘곡물집 도서관’
1층 쇼룸이 몸을 채우는 ‘곡물’의 공간이라면, 나무 계단을 따라 올라간 2층은 마음을 채우는 문학 서점 ‘데시그램 북스(10g Books)’의 공간입니다.
커다란 통창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공주 원도심의 지붕들과 멀리 보이는 공산성의 능선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입니다. 낮은 조도의 조명과 나무 가구들이 주는 따뜻함 속에서 책을 읽으며 ‘로컬의 속도’를 온전히 누릴 수 있습니다.

데시그램 북스는 곡물집이 지향하는 ‘몸의 양식(곡물)’과 ‘마음의 양식(책)’이라는 공통된 분모 아래 기획되었습니다. ‘데시그램(10g)’이라는 이름은 아주 작은 단위조차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상징하며, 정교하게 큐레이션된 책들을 통해 방문객에게 사유의 시간을 제공합니다.
이곳의 서가는 단순히 책을 진열하는 것을 넘어, 농업, 환경, 인문학적 삶의 태도를 다룬 도서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책 한 권을 고르는 행위 자체가 토종 곡물을 수집하듯 경건하고 즐거운 경험이 됩니다.

EDITOR’S TIP: 공주 여행의 정점
공주를 방문한다면 무령왕릉과 공산성을 둘러본 후, 반드시 이곳 봉황동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시길 권합니다. 1층에서 나만의 취향에 맞는 곡물 커피를 주문한 뒤, 2층 도서관의 창가 자리에 앉아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