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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말에서 시작된 제국, 에르메스(Hermès)

1837년 파리의 바스-듀-름파르(Basse-du-Rempart) 한 골목, 말안장 냄새가 진동하던 작은 공방에서 한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가죽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이름은 티에리 에르메스(Thierry Hermès). 독일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귀족이 아닌 장인이었고, 그의 손끝은 오직 완벽한 안장만을 꿈꿨습니다.

Thierry Hermès | Success story of the classic brand Hermès
티에리 에르메스와 그의 첫 매장

근대화의 바람이 불어오던 파리에서 그는 가볍고 심플한 마구용품을 열망하는 고객들의 바램을 처음부터 이해하고 이에 대비하였습니다. 그의 마구용품은 섬세하고 정밀하였으며, 모든 면에서 빈틈이 없는 내구성을 갖추었습니다. 그리하여, 1867년 파리 만국 박람회(Universal Exhibition)에서 수상을 하며 그 기술적 성과를 인정받았습니다.

그의 고객은 프랑스 상류층 귀족들이었죠. 말 위에서 권위를 과시하던 시대, 에르메스의 안장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지위의 상징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몰랐습니다. 이 안장이 훗날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가방의 씨앗이 될 줄은요.

티에리 에르메스

1880년: 샤를 에밀 에르메스(Charles-Emile Hermès)

티에리 에르메스의 아들, 샤를 에밀 에르메스(Charles-Emile Hermès)는 공방을 포부르 생토노레 24번가로 이전하고 그곳에 매장을 열었습니다. 현재는 에르메스의 상징과도 같은 이 곳에서 마구와 안장을 주문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뛰어난 제품을 만들면서 에르메스의 명성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24 Faubourg Saint-Honoré
에르메스 매장, 포부르 생토노레 24번가, 1880년

말이 사라지고, 시작된 신화

1900년, 승마용 안장을 담기 위한 가방 ‘오뜨 아 쿠르와(Haut à Courroies)’가 탄생했습니다. 기능을 위한 디자인이었지만, 그 정교한 가죽과 실루엣은 이미 예술의 경지였습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산업혁명이 세상을 뒤집고 자동차가 말을 밀어냈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었고, 에르메스의 마구 공방도 벼랑 끝에 몰렸습니다. 하지만 그의 후손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말에서 사람으로, 안장에서 가방으로.” 이 한 문장이 에르메스를 살렸죠.

Saddle Bag Haut à Courroies The Hermès Logo And Brand: Traditional Branding  At Its Finest
안장을 넣은 Haut à Courroies 가방

케리와 버킨, 우연이 낳은 영원

1930년대, 한 여배우가 등장했습니다. 모나코의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는 영화 촬영 중 에르메스 가방으로 배를 가리며 임신 사실을 숨겼습니다. 그 장면이 전 세계 신문 1면을 장식했고, 이는 ‘성공 스토리’의 서막이 되었고, 에르메스는 그레이스 켈리에 대한 오마주로 이 핸드백의 이름을 ‘켈리(Kelly) 백’이라고 지었습니다.

수십 년 뒤, 또 다른 전설이 태어납니다. 1981년 파리–런던행 비행기에서 배우 제인 버킨(Jane Birkin)이 옆자리 남자에게 불평했습니다.

“가방이 너무 작아요. 아이 물건을 넣을 데가 없어요.”

그 남자는 놀랍게도 에르메스 CEO 장 루이 뒤마(Jean-Louis Dumas)였습니다. 그는 비행기 안에서 직접 스케치를 시작했고, 그렇게 버킨 백(Birkin Bag)이 탄생했습니다. 이 가방 하나로 에르메스는 ‘럭셔리의 상징’이 되었고, 수년을 기다려야 살 수 있는 기다림의 예술품이 되었죠. 에르메스는 그 순간부터 ‘패션’이 아닌 ‘신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Jane Birkin and her namesake bag created by Jean-Louis Dumas of Hermes.  Photo Credit Wonderland - University of Fashion Blog
제인 버킨과 버킨백

한 사람, 한 가방, 한 세기

에르메스는 6세대에 걸쳐 변함없이 전 과정이 수작업으로만 이루어지는 완벽한 장인정신을 보여주는 브랜드입니다. 그들은 외부 투자자를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자신들의 이름으로 회사를 지켜왔습니다. 전 세계 45개 국가에 300개 넘는 매장을 열었지만, 모든 제품은 프랑스에 있는 50여 개 공방에서 수작업으로 제작해 최고의 품질을 지켜내고 있죠.

“우리는 광고를 하지 않는다. 우리의 광고는 품질이다.” 이 말은 지금도 에르메스 본사 벽에 걸려 있다고 합니다.

로고 속 마차와 말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출발점으로의 존중’을 뜻합니다. 말에서 시작한 브랜드는 말을 잊지 않았고, 오늘날에도 파리 공방에서 장인은 고개를 숙이고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이어갑니다.

그 순간, 180여 년 전의 그 소리—가죽을 두드리던 티에리의 망치 소리—가 여전히 들리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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