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창작자, 타셈 싱-더 폴(The Fall) ②

타셈 싱 감독은 영화계에서 ‘무모한 창작자’라는 별칭에 걸맞은 결정적 순간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의 두 번째 장편 영화인 <더 폴: 디렉터스 컷>은 단순한 오락이 아닌 예술의 경계를 허물며 특수 효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철저히 현실을 추구한 결과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프로젝트에 걸린 시간은 무려 15년이었고, 그 과정에서 감독은 직접 28개국을 돌아다니며 각별한 장소 선정에 힘을 쏟았습니다. 이런 대규모 로케이션 촬영은 단순한 영화 제작의 범위를 넘어, 진정한 예술적 탐구로 발전했습니다.

전 재산을 투자한 영화

타셈 싱은 이미 나이키, 코카콜라, 아우디, 폭스바겐을 비롯해 여러 명품 CF와 뮤직비디오 연출로 유명했는데, 그렇게 차곡차곡 벌어놓은 돈이 이 프로젝트에 다 투자했습니다. 6,500만 달러라는 엄청난 제작비를 대부분 자신의 전재산으로 메꾸며 영화에 대한 열정을 쏟은것입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이 선택은 그를 ‘광기’에 가까운 창작자로 만들었고, 그의 견고한 신념은 “대중적이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데까지 이어졌습니다. 싱 감독은 당시 광고계에서 쌓은 자본과 심지어 결혼 자금까지 영화 제작에 투자해 그의 창작물에 대한 굳건한 의지를 증명했습니다. 데이비드 핀처의 표현처럼, 그는 ‘그걸 현실화한 유일한 멍청이’로 불리며 영화계의 전설로 기록되었습니다.

현실의 환상을 쫓는 여정

<더 폴>의 제작 과정에서 타셈 싱 감독은 현장 촬영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CG는 기술이 더 발전한 뒤 보면 촌스럽지만, 현실을 촬영한것은 결코 낡지 않는다”는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며 실제 로케이션 촬영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영화를 통해 목소리와 감정을 전하는 장소들이 사라지기 전에 그들을 담아내겠다는 의지로 사막, 정글, 고대 유적지를 샅샅이 돌아다녔습니다. 그 중에는 스코틀랜드의 광활한 초원, 캄보디아의 신비로운 앙코르와트, 이탈리아의 고전적인 도시 풍경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여행하며 찾은 장소들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며, 타셈 싱의 독창적인 연출력을 더욱 부각 시켰습니다.

1. 환상의 미로–인도 자이푸르 계단 우물 (찬드 바오리)

찰스 다윈이 영혼의 동반자인 원숭이 월레스를 잃은 계단. 타셈 싱은 인도 라자스탄 주 자이푸르 근처 16세기에 건축괸 계단 우물 찬드 바오리를 찾아냅니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공간으로, 한때 세금 계산을 위해 물의 깊이를 잴 때 사용되었습니다. 물이 깊을수록 높은 세금이 매겨지던 낡은 방식이 깃든 이곳은 과거에는 일반적으로 물속에 잠겨 있어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타셈 싱 감독은 이곳의 아름다움과 복잡한 건축 디자인에 매료되어 촬영을 진행하였습니다. 촬영 당시 주민들은 제작진이 왜 이렇게 시시한 우물을 찍는지 궁금해했으나, 타셈 싱의 시선에는 찬드 바오리가 독특한 미적 요소를 지닌 장소로 비춰졌습니다. 이후 이 장소는 많은 인도 영화에서도 등장하게 되었으며, 타셈 싱이 발견한 미적 가치 덕분에 세상이 잃어버린 보물이 되었습니다.

2. 인도 자이푸르 미로 (잔타르 만타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던 인디언의 아내가 오디어스를 거부한 죄로 감금당한 절망의 미로. 이 미로를 위해 타셈 싱은 자이푸르에 위치한 잔타르 만타르 공원을 촬영지로 선정하였습니다. 이곳은 인도의 드라마틱한 역사와 과학이 얽힌 장소로, 고대 인도의 천문학과 독창성을 보여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입니다. 400년 된 전망대 잔타르 만타르는 그 독특한 형태로 알려져 있는데, 각각의 계단이 별을 향하고 있습니다. 타셈 싱 감독은 이 공간에서 단순히 아름다움만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카메라의 앵글을 조정하여 주변 환경을 제거하고, 보다 혼란스러움과 뒤얽힘의 느낌을 담은 미로의 이미지로 재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잔타르 만타르는 그 자체로 강렬한 심리적 공간으로 변모하였고, 관객에게 독특한 시각적 경험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3. 인도 조드푸르 블루시티

다섯 용사의 원수인 오디어스의 성이 있는 푸른 도시. 이곳의 주민들은 도시의 요새를 감추기 위해 파란색으로 집을 칠했던 곳입니다. 이 도시에서 타셈 싱은 불에 타는 나무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직접 나무를 옮겨 심는 등 진정한 장면을 만들어 내기 위해 현지 주민들과 협력하였습니다. 그는 주민들에게 페인트를 무료로 제공하며 낡은 벽을 새롭게 칠해 촬영을 진행했고, 이는 조드푸르의 도시 풍경을 재창조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조드푸르는 한국영화 <김종욱 찾기>의 배경지로도 알려지며, 타셈 싱의 창의력이 더해져 이곳의 특징이 더욱 부각되었습니다. 타셈 싱은 이 도시를 통해 대중에게 아름다움과 환상을 제공하면서도, 지나간 슬픈 이야기와 의도를 스크린에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4. 장소를 위해 내용을 수정하다-피지 버터플라이 아일랜드

피지에 위치한 버터플라이 아일랜드는 다섯 용사가 오디어스로부터 추방당해 모이는 아름다운 바다 한가운데의 섬입니다. 이 섬은 그 모양이 마치 나비처럼 보여 ‘버터플라이 리프’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버터플라이 리프는 마나 섬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지도에서 찾기가 꽤 어려운, 잘 알려지지 않은 곳입니다. 타셈 싱은 이 장소를 광고 연출 중 우연히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자신의 영화에 반드시 넣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이 장면을 위해 특별히 나비가 등장하는 시나리오를 작성하기까지 하였고, 이는 장소가 영화의 내용에도 큰 영향을 미친 사례입니다. 그러나 이 섬은 해수면 상승의 위협에 직면해 있는 상황입니다. 타셈 싱은 이러한 아름다움이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음을 인식하며, 그 순간을 담아내고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습니다.

5. 스테프들도 매료된 아름다움-인도 라다크의 끝없는 사막 레(Leh)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배경으로 다섯 영웅들이 오디어스의 것으로 추정되는 강렬한 붉은색 마차를 발견하고 노예를 구출하기 위해 돌진하는 장면. 히말라야의 15,000피트 상공에서 30명의 전문가와 함께 약 4일간에 걸쳐 찍어 완성한 장면으로 스태프들이 “가장 어려운 촬영이자, 가장 멋진 곳”이라고 말한 장소입니다. 레(Leh)는 라다크에서 가장 큰 도시입니다. 넓고 넓은 사막의 풍광을 찍기 위해 심지어 타셈 싱은 다른 산의 정상에 가 있어서 촬영 내내 스태프들과 배우들은 감독을 보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디지털 장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던 때, 그 고생이 어땠을지 짐작됩니다.

절망에서 떠나는 환상의 세계 – 더 폴 (The Fall)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