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 사이에서 –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한 화가의 삶이 곧 드라마였다. 찬란한 영광의 절정에서 파산과 가족의 죽음을 겪고, 결국 쓸쓸히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그림은 4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숨 쉰다.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그는 단순한 네덜란드 화가가 아니었다. 빛을 그리는 사람, 심리학적 초상화의 개척자, 그리고 예술의 이름을 남긴 영원한 아이콘입니다.

라이덴에서 태어난 불온한 천재
1606년, 네덜란드의 소도시 라이덴에서 태어난 렘브란트는 제지공 아버지와 양초상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습니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책과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던 집안 분위기 속에서 자란 그는 열네 살에 라틴어 학교를 졸업하고, 라이덴 대학교 철학과에 진학했으나 곧 예술에 대한 열망을 따라 화가의 길로 전향했습니다.
그는 빛과 그림자의 극적인 대비, 이른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을 통해 인물의 감정과 내면을 드러내는 화풍을 구축합니다. 그의 초기 작품부터 뚜렷하게 나타나는 강렬한 명암, 생생한 감정 표현, 그리고 인물의 눈빛은 당시 다른 화가들과 전혀 다른 차원의 깊이를 보여주었습니다.

“빛을 그리는 사람” — 렘브란트 화풍의 특징
렘브란트의 작품은 단순한 초상화가 아닙니다. 그는 회화로 사람의 내면을 해부했습니다. 눈빛 하나, 손끝의 떨림, 굽은 어깨에 스민 시간의 흔적까지 캔버스 위에 담았습니다. 그의 화풍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습니다:
- 극적인 명암 대비: 인물을 부각시키고 감정을 강조하기 위한 어둠과 빛의 긴장.
- 거친 붓터치와 두터운 마티에르: 붓의 질감을 살려 마치 조각처럼 생생한 피부와 질감.
- 심리적 통찰: 왕, 장군, 상인뿐만 아니라 거지, 창녀, 가족 등 모든 계층의 감정과 사연을 담음.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무려 90점 이상으로, 그 자체로 한 인간의 인생 연대기이자 죽음을 향한 인간의 시선을 보여주는 미학적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와 명예의 정점, 그리고 폭풍 같은 몰락
렘브란트는 1630년대에 들어서며 암스테르담에서 초상화 화가로 큰 성공을 거두며 부를 축적합니다. 1634년에는 부유한 상인의 딸인 사스키아 반 위런버르흐(Saskia van Uylenburgh*와 결혼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립니다. 이 시기에 그는 대표작인 〈야경(Night Watch)〉, 〈목욕하는 밧세바〉, 〈투구 쓴 남자〉, 〈다비드와 우리야의 아내〉 등을 제작하며, 유럽 전역에서 명성을 떨칩니다.
그러나 렘브란트 자신의 화풍이 성숙하면서 평면적인 초상화로는 만족하지 못했고, 점차 내면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지면서 종교적/신화적인 소재를 따서 그리거나, 자화상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세속적인 성공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1642년에 완성한 명작인 ‘야경’또한 당시에는 혹평을 받았는데. 이는 암스테르담 자경단 협회의 의뢰를 받아 그린 것으로, 렘브란트는 당시의 기념사진 같은 단체 초상화에 만족하지 못해, 명암 효과를 주는 식으로 대담한 구성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돈을 냈는데 누구는 주인공처럼, 누구는 배경처럼 묘사되어서 당대의 그림 구조와 크게 어긋났기 때문에 몹시 기분 나빠했습니다.

1689년, 죽음과 묻히지 않은 예술
그리고 바로 그 해 1642년, 당시 부인 사스키아의 죽음으로 경제적 부담이 커졌고, 당시 아트 컬렉터들이 밝고 화사한 그림을 선호하며 천재화가 렘브란트의 인기는 점점 떨어졌습니다. 인기가 떨어짐에도 렘브란트는 비상업적 그림이나 자화상에 더 매진했고, 아내가 죽은 뒤로 돈을 흥청망청 쓰면서 몰락하게 됩니다.
1662년에는 두번째 부인 헨드리켜도 세상을 뜨고, 1668년에는 사스키아의 사이에서 본 아들인 티튀스마저 세상을 뜨면서 렘브란트도 1669년, 유대인 구역의 허름한 집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렘브란트는 1669년 10월 4일, 암스테르담의 공동묘지에 조용히 묻혔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점점 잊었고, 그의 이름은 한동안 예술사의 그림자 속에 묻혔습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며 렘브란트는 ‘빛의 화가’, ‘심리의 조각가’로 다시 불리기 시작했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빈센트 반 고흐, 피카소조차 존경을 표한 화가로 부활합니다.

그림 속에는 렘브란트가, 우리 안에는 렘브란트가 있다
렘브란트는 화려한 붓질로 누군가를 치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인간, 어둠 속에서 빛을 갈망하는 인간을 포착했습니다. 그 덕분에 그의 그림은 시대를 초월하고, 그의 이름은 물감이 되고, 전시가 되고, 빛이 되어 오늘날까지도 살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