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 ② – 바로크에서 사실주의까지
신을 벗어난 감정의 연극, 바로크 (17세기)
르네상스가 이성과 이상을 예찬한 시기였다면, 바로크는 감정과 극적 순간의 포착을 통해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갑니다. 17세기 유럽은 종교 개혁과 반종교개혁, 절대 왕정의 등장 등으로 혼란과 정치적 긴장 속에 있었고, 미술은 이 시대의 복잡한 정서를 시각적으로 풀어내기 시작합니다. 웅장하고 대칭적 구성을 통해 역동적인 움직임을 특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카라바조(Caravaggio)는 성 마태오의 소명, 가시관을 쓰는 그리스도와 같은 작품에서 키아로스쿠로(강한 명암 대비) 기법을 활용해 신성한 장면을 현실 속으로 끌어왔습니다. 그는 기독교 중심의 성스러운 인물 대신, 누추한 현실 속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삼으며 종교를 인간의 삶과 직결된 것으로 재해석했습니다.
한편 피터 폴 루벤스(Peter Paul Rubens)는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삼미신 등을 통해 풍만한 육체, 격렬한 움직임, 화려한 색감으로 관능적이고 장대한 회화를 선보였습니다. 조각에서는 잔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가 성 테레사의 황홀경, 다비드, 아폴론과 다프네로 시간성과 감정을 대리석에 담아내는 마술을 보여주며, 움직이는 조각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장식과 쾌락의 미학, 로코코 (18세기)
바로크의 장엄함과 엄숙함이 귀족들에게 과하게 느껴지자, 18세기 초 프랑스에서는 사적인 쾌락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로코코가 등장합니다. 18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섬세하고 우아하며, 장식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미술을 공공성과 신성함에서 분리시키고, 우아함과 취향의 영역으로 옮기는 움직임이었습니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는 그네, 사랑의 고백 등에서 쾌활한 색감과 비대칭적 구도로 사랑과 욕망, 도피적 세계를 그렸습니다. 그의 그림은 은밀하고 개인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다뤘다는 점에서 이전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프랑수아 부셰(François Boucher)는 목욕하는 비너스를 통해 관능적 이상미를 신화 속에 이식했으며, 앙트완 와토(Antoine Watteau)는 사랑의 섬으로의 출발에서 일시적인 정서와 우아한 멜랑콜리를 표현하며 로코코 회화에 시적 회화적 리듬을 부여했습니다.

고전의 귀환, 질서의 미학 신고전주의
프랑스 대혁명 이후, 혼란과 향락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대적 요구는 질서와 도덕을 강조하는 고전 회화의 부활로 이어졌습니다. 신고전주의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형식을 복원하며 국가, 의무, 덕성이라는 계몽주의적 가치를 시각화합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는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마라의 죽음, 나폴레옹의 대관식 등을 통해 고대의 영웅적 서사와 도덕적 절제를 강조하며 혁명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시각적 프로파간다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화면 구성과 선의 명료함, 인물들의 비감정적 표정을 통해 “사유하는 회화”를 실현했습니다.
그의 제자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는 그랑 오달리스크, 오시앙을 경배하는 나폴레옹 등에서 고전적 선묘와 신화적 이상미를 추구하면서도, 감정보다는 형식적 완성도를 강조하였습니다. 그의 누드는 현실을 왜곡하면서도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한 시대의 미적 규율을 반영합니다.

자유와 감정의 회화, 낭만주의 (18세기 말 ~19세기)
하지만 이성은 인간을 다 설명하지 못합니다. 낭만주의(Romanticism)는 인간의 감정, 상상력, 열정, 그리고 고통에 주목하며, 회화를 다시 주관과 감성의 공간으로 되돌립니다. 개인의 감정과 상상력, 주관적인 경험을 중시하며, 현실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보이고 이상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것을 가장 큰 특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등에서 혁명적 열정, 낭만적 비극, 인간의 감정을 화려한 색채와 격렬한 붓질로 표현하며, 고전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그의 회화는 혼란을 감각적으로 재현하며, 이후 인상주의로 이어지는 색채 중심 회화의 서막을 엽니다.
윌리엄 터너(J. M. W. Turner)는 노예선, 비, 증기, 속도 등의 작품을 통해 자연의 숭고함과 인간의 미약함을 시각화했으며, 형체의 경계를 해체하는 방식은 추상 회화의 선구적 요소로도 평가됩니다.

현실의 그림자, 사실주의의 도전
산업혁명과 계급 갈등이 확산되던 19세기 중반, 예술가들은 이상화된 세계가 아닌 눈앞의 현실을 정직하게 그리는 사실주의(Realism)로 전환합니다.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는 돌깨는 사람들, 장례 행렬, 아틀리에 등에서 노동자와 시골 사람들의 일상을 장엄하고 서사 없이 묘사하였습니다. 그는 “나는 천사도 요정도 본 적이 없다. 내가 본 것을 그릴 뿐이다”라는 말로 화가로서의 윤리와 시각의 독립성을 선언했습니다.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는 이삭 줍는 사람들, 씨 뿌리는 사람, 만종 등을 통해 농촌 노동의 숭고함과 인간의 삶에 대한 경외를 회화로 드러냈으며, 그의 그림은 사회주의적 해석과 신앙적 감성을 함께 품은 성찰의 회화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