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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장-비트라 캠퍼스

스위스 바젤 근교, 독일 국경에 인접한 소도시 바일 암 라인(Ville am Rhein). 이 평범한 산업도시의 한복판에, 전 세계 건축가와 디자이너, 예술 애호가들이 순례하듯 방문하는 ‘디자인 성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구 브랜드 비트라(Vitra)가 만든 ‘비트라 캠퍼스(Vitra Campus)’입니다. 이곳은 단순한 공장이 아닌, 현대 건축과 디자인, 예술이 총체적으로 구현된 살아있는 박물관입니다. 프랭크 게리, 자하 하디드, 헤르조그 & 드 뫼롱, 알바 알토, 안도 타다오, 장 프루베 등 20세기와 21세기의 전설적인 건축가들의 건축이 집결한 이 캠퍼스는, 지금 이 시대 디자인이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산업과 예술의 경계 실험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프랭크 게리의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재건의 시작

비트라 캠퍼스의 역사는 1981년 한 차례의 대형 화재에서 시작됩니다. 전통적인 공장 단지였던 비트라 본사는 당시 불에 타면서 주요 생산 시설을 잃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창립자 로르 비벨(Rolf Fehlbaum)은 과감한 결정을 내립니다. “단순히 공장을 복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구라는 제품의 철학과 영감을 구현하는 공간을 만들자.” 이 결정은 산업 생산의 장을, 세계적인 건축 실험장으로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 첫 번째 주자는 프랭크 게리(Frank Gehry). 그는 1989년, 유럽 최초의 작업인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Vitra Design Museum)과 공장 건물, 게스트 하우스를 동시에 완성합니다. 곡선과 직선을 해체해 중첩하는 듯한 건축은 단숨에 이곳을 세계 디자인계의 핫스팟으로 끌어올렸습니다.

The Vitra Campus - 예스24
헤르조그 & 드 뫼롱의 비트라하우스

거장들의 건축

비트라 캠퍼스의 진가는 건물 하나하나가 모두 세계 건축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전 세계 유수의 건축학교에서 반드시 다뤄지는 대표 건축들이, 이 좁은 단지에 집약돼 있기 때문입니다.

  •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소방서(Vitra Fire Station, 1993): 그녀의 첫 완공작으로, 뾰족하고 날카로운 선들이 날을 세운 조형은 기능보다 조형성과 감각에 집중한 전환점이었습니다.
  • 앤 스티븐 홀(Steven Holl)의 비트라 전시관(2009): 불규칙한 다면체들이 중첩된 구조는 디지털 시대 건축의 추상성을 구현한 대표 사례로 꼽힙니다.
  • 안도 타다오(Tadao Ando)의 컨퍼런스 파빌리온(1993): 외부는 단순한 콘크리트 박스지만, 내부는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명상적인 공간으로 설계돼 있습니다.
  • 알바로 시자(Álvaro Siza)의 공장 증축(1994)과 산책로절제된 미감과 공공성의 조화를 보여줍니다.
  • 헤르조그 &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의 비트라하우스(VitraHaus, 2010)는 브랜드 쇼룸이자 건축 관광의 하이라이트. ‘집 위에 집을 얹은 듯한’ 상자 구조로, 마치 동화 속 집을 재구성한 듯한 감각을 줍니다.
  • SANAA의 팩토리 빌딩(2012)은 유려한 곡선과 반사 유리로 이루어진, ‘보이지 않는 건축’이라는 찬사를 받는 건축입니다.
Factory Building on the Vitra Campus / SANAA | ArchDaily
SANAA의 팩토리 빌딩

디자인을 체험하는 공간

비트라 캠퍼스는 단순히 가구를 파는 공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구를 통해 삶의 방식과 철학을 제안하는 공간입니다. 비트라하우스 내부는 쇼룸이라기보다 하나의 디자인 연출 드라마입니다. 모던 클래식, 컨템포러리, 플레이룸, 크리에이티브 공간, 컬렉터의 방 등 각기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한 테마룸들이 마치 가구와 건축이 살아 움직이듯 연결돼 있습니다.

비트라하우스 1층의 카페와 서점, 그리고 지하의 미디어라이브러리는 ‘생활 속 디자인’이라는 비트라의 철학을 그대로 구현한 공간입니다. 또한, 캠퍼스 곳곳에는 장 프루베의 버스 정류장, 존 파슨스의 돔 구조, 찰스 & 레이 임스의 설치 조형물디자인 역사의 조각들이 숨겨져 있어, 캠퍼스를 거닐다 보면 마치 야외 디자인 뮤지엄을 탐험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Un día en el Vitra Campus

살아 있는 공장

비트라 캠퍼스의 가장 독보적인 점은, 이 공간이 관람객과 소비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이곳은 지금도 가구가 생산되는 현장입니다. 디자인에 감탄하는 관람객이 캠퍼스를 거니는 동안, 반대편에서는 실제 근로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공장들은 그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박스형 건물이 아닙니다. 건물 자체가 노동 환경의 질, 아름다움, 영감의 원천이 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는 곧 디자인이란 소수의 소비자를 위한 럭셔리가 아니라, 인간 삶 전체를 위한 도구라는 비트라의 철학이기도 합니다.

Vitra Circle Store Campus | Products

디자인의 실험실

비트라 캠퍼스는 디자인 기업이 어떻게 자신만의 철학을 공간, 건축, 문화로 확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례 없는 사례입니다. 단순히 유명한 건축가의 건물을 모아놓은 건축 공원이 아닙니다. 이곳은 철저히 ‘디자인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를 실험하는 플랫폼입니다.

디자인이 기능을 넘어 가치를 만들고, 건축이 형태를 넘어 철학을 담는다면, 우리는 그 출발점에서 반드시 비트라 캠퍼스를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 건축적 패러다임의 경계 실험장, 그것이 바로 비트라입니다.

Tsuyoshi Tane: The Garden House" at the Vitra Design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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