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예술 한조각

Art News

세계의 미술관 ⑨ 빛이 빚어낸 예술의 절벽, 영국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Tate St Ives)'

영국 남서부 콘월(Cornwall)의 끝자락, 에메랄드빛 바다와 하얀 모래사장이 펼쳐진 작은 어촌 마을 세인트 아이브스에는 세계적인 현대 미술의 거점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Tate St Ives)가 서 있습니다. 과거 가스 작업장이었던 자리에 세워진 이 미술관은 해안 절벽의 지형을 그대로 살린 채, 대서양의 투명한 빛을 건축의 핵심 요소로 활용한 공간 미학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런던의 도심 미술관들과는 전혀 다른 고요하고도 역동적인 예술적 경험을 선사하는 이곳은 이제 전 세계 예술가와 여행자들에게 ‘빛의 성지’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Tate St Ives
영국 남서부 콘월(Cornwall)에 위치한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Tate St Ives) 전경

테이트 재단, 설탕 제국에서 일궈낸 예술의 꽃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뿌리인 테이트(Tate) 재단의 역사를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테이트의 시작은 19세기 영국, 설탕 정제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기업가 헨리 테이트(Henry Tate) 경의 헌신적인 기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헨리 테이트는 자신이 수집한 영국 현대 미술품들을 국가에 기증하려 했으나, 당시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의 공간 부족으로 거절당했습니다. 이에 그는 사재 8만 파운드를 기부하고 스스로 부지를 마련하여 1897년 ‘내셔널 갤러리 오브 브리티시 아트(현재의 테이트 브리튼)’를 설립했습니다.

Sir Henry Tate', Sir Hubert Von Herkomer, 1897 | Tate
헨리 테이트 경, 1897년

이후 테이트 재단은 헨리 테이트의 유지를 이어받아 영국 미술뿐만 아니라 세계 현대 미술을 아우르는 네트워크로 성장했습니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과 테이트 브리튼, 리버풀의 테이트 리버풀에 이어 1993년 네 번째로 문을 연 곳이 바로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입니다. 재단은 각 지역의 역사적 특색을 살린 분관을 통해 예술의 지방 분권화와 대중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습니다.

Tate St Ives Winter Festival 2023 - Best Days Out Cornwall

현대 미술의 거대한 네트워크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는 런던의 상징인 테이트 모던(Tate Modern)과 한 뿌리에서 나온 형제 미술관입니다. 테이트 재단은 2000년,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를 개조해 테이트 모던을 개관하며 전 세계 현대 미술의 권력을 런던으로 가져오는 ‘테이트 효과(Tate Effect)’를 일으켰습니다.

테이트 모던이 거대한 화력발전소의 규모감을 앞세워 현대 미술의 역동성과 실험성을 상징한다면,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는 그와 대비되는 ‘사색과 빛의 정수’를 담당합니다. 두 미술관은 테이트 재단이 소유한 세계 최대 규모의 현대 미술 컬렉션을 공유하며, 테이트 모던에서 전시된 거장들의 작품이 이곳 콘월의 해안으로 옮겨와 자연광 아래서 새로운 해석을 얻기도 합니다. 특히 런던의 복잡한 도심에서 현대 미술에 압도되었던 관람객들은,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에서 동일한 재단의 수준 높은 큐레이션을 즐기며 대서양의 풍경과 예술이 결합된 훨씬 더 친밀하고 명상적인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는 테이트 재단이 추구하는 ‘다양한 환경에서의 예술적 감각 확장’이라는 전략적 비전의 핵심입니다.

Tate raises £43m from donations as it launches 'ambitious' endowment fund |  Art and design | The Guardian
런던 테이트모던 (Tate Modern)

해안마을의 분관

테이트가 런던을 벗어나 이 먼 해안 마을에 분관을 세운 이유는 명확합니다. 세인트 아이브스는 20세기 초반부터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가 공동체가 형성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화를 피해 내려온 바바라 헵워스(Barbara Hepworth), 벤 니콜슨(Ben Nicholson), 패트릭 헤론(Patrick Heron) 등은 이곳의 독특한 빛과 풍경에 매료되어 ‘세인트 아이브스 학파’를 이뤘습니다.

이들은 해안선의 곡선과 바다의 색채를 추상적으로 해석하며 영국 현대 미술의 황금기를 열었습니다. 테이트 재단은 이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빛의 고향’에 그들의 작품을 되돌려준다는 상징성을 바탕으로 미술관을 건립했습니다. 따라서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는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지역 예술가들의 영혼이 깃든 장소이자 그들의 시각적 언어를 증명하는 살아있는 증언대와 같습니다.

바다를 담는 원형의 그릇

건축가 엘드레드 에반스와 데이비드 샬리프(Eldred Evans & David Shalev)가 설계한 이 건물은 바다를 향해 열린 반원형 구조가 특징입니다. 건물 전면의 거대한 원형 홀은 과거 이곳에 있던 가스 저장고의 형태를 계승하는 동시에, 대서양에서 쏟아지는 빛을 미술관 내부로 골고루 퍼뜨리는 프리즘의 역할을 합니다.

1993: Tate St Ives, Cornwall – The Twentieth Century Society

건물은 해안 절벽의 경사를 따라 계단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관람객은 전시실을 이동할 때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파도의 움직임과 수평선의 변화를 목격하게 됩니다. 특히 ‘포스민스터 비치’를 조망하는 로지아(Loggia) 공간은 건축물이 자연 풍경을 어떻게 프레임 안에 가두고 예술화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2017년 제이미 포버트(Jamie Fobert)가 설계한 증축 공간은 절벽 내부를 파고들어 공간을 확장하면서도 지상부에서는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는 겸손하고도 대담한 건축적 해결책을 제시했습니다.

Tate St Ives - Langley

[Travel Info]

  • 위치: Porthmeor Beach, Saint Ives TR26 1TG, UK
  • 건축: 엘드레드 에반스 & 데이비드 샬리프 (1993), 제이미 포버트 (2017 증축)
  • 운영: 테이트 재단 (Tate Foundation)
  • 팁: 미술관 관람 후 인근에 위치한 ‘바바라 헵워스 박물관 & 조각 정원’을 함께 방문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작가가 실제로 거주하며 작업하던 공간에서 그녀의 작품 세계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Tate St Ives - Best Days Out Cornwall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