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미술관 ⑭ 침묵의 탑: 독일 '브루더 클라우스 필드 채플(Klaus Field Chapel)'
독일 본(Bonn) 근교의 작은 마을 바헤른(Mechernich-Wachendorf).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진 평화로운 농경지 한복판에 기이하면서도 숭고한 형상의 콘크리트 탑이 서 있습니다. 현대 건축의 수도사라 불리는 피터 줌토르(Peter Zumthor)가 설계한 브루더 클라우스 필드 채플(Bruder Klaus Field Chapel)은 건축이 어떻게 영적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 세계적인 성지입니다.

한 농부의 신념과 거장의 조우
이 채플은 대형 재단이나 정부가 아닌, 지역 농부인 헤르만 요제프 샤이츠(Hermann-Josef Scheidtweiler) 부부의 사적인 서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평생 땅을 일구며 살아온 샤이츠 씨는 자신의 삶을 축복해준 수호성인 브루더 클라우스(성 니콜라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작은 기도처를 짓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당시 이미 세계적인 거장이었던 피터 줌토르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평소 상업적인 프로젝트를 거절하기로 유명한 줌토르는, 브루더 클라우스가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성인 중 한 명이라는 점과 농부의 소박하고도 진실한 마음이 담긴 편지에 감동하여 파격적인 조건으로 설계를 수락했습니다.
이 건물은 전문 시공업자가 아닌, 샤이츠 부부와 그의 가족, 그리고 마을 친구들의 자발적인 노동으로 1년에 걸쳐 완성되었습니다. 줌토르는 이들의 서투르지만 정성스러운 손길이 건축의 일부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불과 연기, 그리고 112개의 통나무
이 건축물이 전 세계 건축가들에게 경외감을 주는 이유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시공 방식과 그로 인해 탄생한 압도적인 공간감 때문입니다.
먼저 112개의 통나무를 원뿔 모양으로 세워 거푸집 역할을 할 뼈대를 만들었습니다. 그 주변을 지역의 흙과 자갈을 섞은 콘크리트로 24일 동안 한 층씩 쌓아 올렸습니다. 외벽이 완성된 후, 내부의 통나무 뼈대를 태워 없애기 위해 3주 동안 약한 불을 피웠습니다. 나무가 타면서 남긴 검게 그을린 자국과 거친 나뭇결의 질감은 그대로 내부 벽면이 되었습니다. 이곳에 들어서면 아직도 은은하게 남아 있는 나무 탄 냄새가 공간의 숭고함을 더합니다.
천장은 뚫려 있어 하늘이 그대로 보입니다. 비가 오면 바닥으로 빗물이 떨어지고, 눈이 오면 눈이 쌓입니다. 뚫린 구멍을 통해 쏟아지는 빛은 검게 그을린 내벽의 굴곡을 따라 흐르며 시시각각 변하는 드라마틱한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오감을 깨우는 미니멀리즘의 정수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과정은 하나의 정화 의식과 같습니다.
- 삼각형의 강철 문: 묵직한 삼각형 모양의 강철 문을 밀고 들어가면, 좁고 어두운 통로가 나타납니다. 이 좁은 길을 지나면 갑자기 수직으로 높게 뻗은 내부 공간이 나타나며 관람객의 시선을 하늘로 이끕니다.
- 유리 구슬의 빛: 콘크리트 벽면 곳곳에는 거푸집을 고정했던 구멍들이 뚫려 있는데, 줌토르는 이 구멍들을 350여 개의 투명한 유리 구슬로 메웠습니다. 어두운 내부에서 이 구슬들을 통해 들어오는 작은 빛의 입자들은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입니다.
- 바닥의 질감: 바닥은 납을 녹여 부어 만들었습니다. 거친 벽면과 매끄러운 바닥, 그리고 차가운 납의 물성은 발끝에서부터 전해지는 감각을 예민하게 깨웁니다.

럭셔리의 진정한 정의, ‘본질’로의 회귀
브루더 클라우스 필드 채플에는 화려한 장식도, 냉난방 시설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그 어떤 럭셔리 호텔보다도 깊은 평온과 풍요로움을 줍니다. 피터 줌토르는 “장소의 영혼을 담는 것”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수백 명의 손길이 닿은 콘크리트 층과 나무의 흔적은 시간이 흐를수록 대지의 일부로 동화됩니다.
이곳을 찾는 전 세계의 방문객들은 침묵 속에서 자신과 마주합니다. 럭셔리 아트 매거진 독자들에게 이 채플은 비움으로써 얻는 충만함이 무엇인지, 그리고 본질에 집중하는 미학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갖는지 증명하는 최고의 사례입니다.

[Travel Info]
- 위치: Iversheimer Str., 53894 Mechernich, Germany
- 건축: 피터 줌토르 (Peter Zumthor)
- 특징: 2007년 완공. 농부의 사비와 노동으로 지어진 민간 채플.
- 팁: 미술관이 아니기 때문에 개방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채플까지 탁 트인 들판 길을 약 15분 정도 걸어야 하는데, 이 걷는 시간 자체가 명상의 시작입니다. 사진 촬영보다는 공간의 울림과 나무 탄 향기를 온전히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