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의 시 – 앤디 골드워시(Andy Goldsworthy)
농장에서 시작된 예술가
앤디 골드워시(Andy Goldsworthy, 1956~ )는 어린 시절 영국 요크셔 농장에서 돌을 나르고 가축을 돌보며 자랐습니다. 그 경험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자연을 다루는 직관적 감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조각가로서 훈련을 받았지만, 흙과 바람, 계절의 변화 속에서 얻은 감각이야말로 그의 첫 번째 교과서였죠.

그의 초기 작업은 농장의 돌과 나뭇잎, 얼음을 손으로 모아 만든 원형 조형물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조각은 박물관 안이 아니라 숲 속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실험했습니다. 나뭇잎을 정렬해 만든 붉은 원, 강가에서 얼음을 엮어 만든 아치, 바람에 흩날릴 운명을 가진 풀의 묶음 등—그의 첫 작품들은 언제나 사라질 준비가 된 예술이었죠.

예술 철학, 사라짐을 전제로 한 창작
골드워시는 “내 작품은 완성되는 순간부터 사라지기 시작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영속성과 기념비적 조형을 거부하고, 오히려 덧없음과 시간의 흐름을 작품의 본질로 삼았습니다. 관객은 그가 만든 돌탑이 무너지는 순간, 얼음 아치가 햇살에 녹아내리는 과정을 목격하며 자연의 무한한 변화를 깨닫습니다. 그의 작업은 소멸이 곧 완성이라는 역설적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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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작, 자연의 시편
• Ice Arch (얼음 아치): 겨울날 강가에서 얼음을 조각해 쌓은 아치형 구조물입니다. 완벽한 곡선은 몇 시간 만에 녹아 사라지지만, 사진 속에는 그 순간의 긴장과 빛의 투명함이 영원히 남습니다.
• Leaf Circle (낙엽 원): 숲 속에서 붉은 단풍잎을 원형으로 배치한 작품입니다. 주변의 갈색 낙엽 사이에서 붉은 원은 마치 살아 있는 심장처럼 뛰는 듯 보이죠.
• Stone Cairns (돌탑 연작): 강가와 언덕에서 돌을 층층이 쌓아 올린 탑은 인류의 원형적 기호를 떠올리게 합니다. 물살과 바람에 무너질 운명을 지니지만, 바로 그 불안정성에서 생명감을 얻습니다.
• Sheep Paintings (양 흔적 드로잉): 최근 그는 스코틀랜드 농장에서 양의 움직임과 울타리에 남은 흔적을 활용해 드로잉 같은 패턴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자연과 인간, 동물이 함께 만들어내는 ‘살아 있는 그림’으로 평가됩니다.


50년의 궤적, 회고전
2025년,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은 대규모 전시 〈Andy Goldsworthy: Fifty Years〉를 열었습니다. 사진, 영상, 드로잉을 통해 그의 50년 예술 여정을 총망라했으며, 관람객은 마치 숲과 강을 거니는 듯한 전시 동선을 경험했습니다. 가디언은 이를 두고 “삶과 죽음, 소멸과 재생을 걷는 듯한 체험”이라 평했죠.

소멸을 중시하는 자연의 시인
앤디 골드워시는 단순히 자연을 재현하는 조각가가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예술을 쓰는 시인 같은 인물입니다. 그의 작업은 생태적 메시지를 품고 있으며, 예술의 지속 가능성과 환경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열어줍니다.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현대 사회 속에서, 그는 오히려 ‘사라짐’을 존중하는 예술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묻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