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마시는 브랜드-코카콜라(Coca-Cola)
코카콜라 병,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실루엣의 탄생기
눈을 감고 만져도 알 수 있는 병, 어둠 속에서도 구분되는 유리의 굴곡. 코카콜라 병은 단순한 용기가 아니라, 20세기 산업디자인의 아이콘이자, 글로벌 브랜드의 조각상이라 불릴 만한 존재입니다. 이 병 하나에 담긴 곡선의 역사와, 코카콜라가 이를 어떻게 브랜드의 영혼으로 승화시켰는지 살펴보면, 그저 음료가 아닌 시대와 미학의 결합체임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술 대신에 마실 수 있는
현재 전 세계 음료수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한 코카콜라는 1886년 탄생했습니다. 당시 약사였던 존 펨버튼 박사가 주류 판매 금지로 인해 술을 대체할 수 있는 음료수를 고안해 냈는데, 그것이 바로 코카콜라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사 캔들러와 프랭크 M. 로빈슨은 1892년 코카콜라 회사를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코카-콜라의 높은 인기와 성장에 시기를 느낀 경쟁업체들이 코카-콜라의 유사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병은 단순한 직선 형태라 모방도 어렵지 않았죠.
이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을 생각해냅니다.

‘누가 봐도 코카콜라’라는 미션
1915년, 미국 코카콜라 본사는 하나의 전대미문의 공모전을 개최합니다.
조건은 단 두가지. “어두컴컴한 곳에서 만져도, 깨진 병 조각들만 보고도 코카-콜라 병인지 알 수 있어야 한다”
이에 응답한 것은 인디애나주의 루트 글래스 컴퍼니(Root Glass Company). 디자이너 알렉산더 새뮤얼슨(Alexander Samuelson)과 팀은 코카콜라의 원재료로 알려진 코카 잎이나 콜라 열매의 형상을 찾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카카오 열매의 이미지를 참고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컨투어 병(Contour Bottle)’의 전신이 됩니다.
1916년부터 본격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이 병은 기존의 직선적이고 투박했던 병들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병 몸체 중앙은 잘록하게 들어가 있었고, 병목은 우아하게 뻗어 올라가며, 하단은 마치 튤립처럼 퍼져 있었습니다. 이 형태는 사람의 허리 곡선을 닮아 ‘허리병(Hobble Skirt Bottle)’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습니다.
이 병이 대중 속에서 사랑받은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 파손되어도 조각만으로 코카콜라임을 알아볼 수 있고
- 눈으로 보기 전 손에 쥔 촉감만으로도 브랜드를 느낄 수 있으며
- 어둠 속 자판기에서도 쉽게 고를 수 있는 물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915년 11월 16일 코카-콜라 병은 디자인 특허를 받았고, 이듬해 1916년에는 코카-콜라의 공식 디자인 병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팝아트 속 영원한 뮤즈
코카콜라 병은 예술가들에게도 영감을 주었습니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은 컨투어 병을 이용해 ‘코카콜라 병 시리즈’를 제작하며 대중 소비와 예술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워홀은 말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나 노숙자나 똑같은 코카콜라를 마신다.” 그만큼 이 병은 민주주의적 심벌이자, 대중 예술의 상징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살바도르 달리, 로버트 라우션버그, 키스 해링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코카콜라 병을 소재로 삼았습니다. 이는 그 형태 하나만으로도 상징성을 담보한 디자인이라는 뜻입니다.

한 병으로 세계를 설득하다
오늘날, 코카콜라 병은 190개국에서 하루 20억 개 이상 팔리는 글로벌 심벌입니다. 컨투어 병은 2007년 미국 산업디자인협회(IDSA)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산업디자인 100선’에 이름을 올렸고,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런던 디자인 뮤지엄에도 전시되었습니다.
코카콜라 병은 단순한 유리병을 넘어 감각 속에 새겨지는 브랜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