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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신 직업의 탄생-문신사 (Tattooist)

금기의 표식에서 문화의 코드로

한국에서 문신은 오랫동안 금기와 낙인의 언어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범죄자의 신체를 식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문신=범죄’라는 도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1960~70년대에 이르면 조직폭력배들이 권위와 공포를 각인하는 방식으로 문신을 이용하며, 문신은 더욱 사회적 배제의 대상으로 굳어졌습니다. 병사들 사이에서조차 소속감과 용맹의 상징으로 새겨진 문신은 곧 국가의 관리 체제 속에서 불온한 기호로 규정되었죠. 한국의 문신은 출발부터 제도와 충돌하는, 허락되지 않은 예술이었습니다.

한국도 타투 합법화가 이뤄질까? | Hypebeast.KR | 하입비스트

법정의 판결, 그림자가 된 예술

1992년 대법원의 판결은 한국 문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분수령이었습니다.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은 불법이라는 선언은, 한국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문신을 제도적으로 금지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타투이스트들은 세금을 내고 작업실을 운영할 수 있었지만, 시술 행위 자체는 법으로 단죄된 상태였습니다. 언제든 단속과 고발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삶, 합법적 노동자이자 동시에 범법자라는 모순된 신분 속에서 문신은 제도 밖에 밀려나 있었습니다.

Aided by Instagram, Korea's Tattoo Artists Are Grabbing Attention - The New  York Times

몸 위에 새겨진 자유의 언어

그럼에도 문신은 단절되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 이후 세계적인 타투 문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의 젊은 세대는 문신을 자유와 개성의 표식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록 뮤지션, 힙합 아티스트, 패션 인플루언서들은 문신을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무대로 사용했고, 2000년대에는 K-팝 아이돌과 스포츠 스타들이 문신을 대중 앞에 드러내며 대중문화의 코드로 확산 시켰습니다. 그러나 대중의 인식 변화와 달리, 법은 여전히 그 변화를 외면했습니다.

불법의 그림자 속에서도 한국 타투이스트들은 세계적인 무대에서 주목받았습니다. SNS를 통해 자신들의 작업을 공유하고, 해외 컨벤션에 초청되며, 섬세하고 정교한 한국식 타투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낸 것이죠. 아이러니하게도 국내에서는 범죄자로 규정된 그들이 해외에서는 예술가로 호명되었습니다. 문신은 한국에서 단순한 장식이나 패션이 아니라, 억압된 자유를 드러내고 예술로 변환하는 문화적 저항의 형식이 된 것입니다.

타투이스트 김도윤 (a.k.a. 도이) : PARKSEOBO FOUNDATION
타투이스느 DOY (김도윤) 작품

12179일의 투쟁과 연대

합법화를 향한 싸움은 길고도 치열했습니다. 타투이스트들은 스스로를 조직하며 민주노총 산하에 타투유니온을 설립했고, 노동자이자 예술가로서의 권리를 주장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수차례 법안이 발의되었다가 무산되기를 반복했지만, 그 과정에서 타투이스트들은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라는 목소리를 거침없이 외쳤습니다. 특히 류호정 의원 등 일부 정치인들의 꾸준한 지원은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33년, 12179일 동안 이어진 투쟁은 점차 한국 사회가 문신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도록 만들었습니다.

해방의 순간, 제도 속으로 들어온 문신

2025년 9월 25일, 국회는 마침내 문신사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의료인이 아니더라도 국가가 인증한 자격을 갖춘 ‘문신사’라면 합법적으로 시술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법률의 제정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문신을 예술과 권리의 차원에서 승인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타투이스트는 더 이상 숨어서 작업할 필요가 없었고, 고객은 제도적 안전망 속에서 문신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신은 이제 한국 사회에서 범죄의 흔적이 아닌 문화의 언어로 공식 인정받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합법화가 아니라, 예술과 자유, 제도와 개인 사이의 긴장이 만들어낸 새로운 질서입니다. 문신은 몸 위에 새겨지는 하나의 캔버스이자, 자기 이야기를 담아내는 가장 개인적인 예술입니다. 12179일의 긴 싸움 끝에, 문신은 마침내 한국 사회의 주류 문화와 제도 속으로 들어온 해방의 예술이 되었습니다.

이제야 떳떳해졌다 환호…33년 만에 불법 뗀 문신사들 |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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