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실재보다 더 생생한 가짜,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Simulation)
시뮬라크르가 탐미적인 ‘객체’라면, 시뮬라시옹은 그들을 부리는 은밀한 ‘통치 미학’이다. 원본과 복제의 위계가 붕괴된 이 고결한 허구의 시대, 우리는 어떻게 가상의 소용돌이에 포섭되었는가.
전편에서 우리는 플라톤의 ‘기만적인 그림자’를 지나 앤디 워홀의 ‘찬란한 복제’에 이르기까지, 현실의 빈자리를 우아하게 찬탈한 복제물, ‘시뮬라크르’의 미학적 존재감을 목도했습니다. 이제 논의는 그 정적인 존재들을 넘어, 그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직조되어 우리의 현실 감각을 매혹적으로 마비시키는지, 즉 ‘시뮬라시옹(Simulation)’의 파괴적인 역학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 스크린 속의 세계를 마주합니다. 인스타그램의 필터로 보정된 완벽한 풍경, AI가 생성한 초현실적인 인물, 그리고 실제보다 더 먹음직스럽게 연출된 광고 속의 음식들. 과연 우리가 보는 것은 ‘진실’일까요?

존재(Simulacre)와 역학(Simulation)의 간극: 명사와 동사의 차이
가장 쉬운 이해를 위해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시뮬라크르가 ‘배우’라면, 시뮬라시옹은 그 배우들이 연기하는 ‘연극 그 자체’입니다.
- 시뮬라크르(Simulacre) – “무엇이 가짜인가?” 시뮬라크르는 결과물, 즉 명사입니다. 원본이 없거나 원본을 잊게 만드는 ‘복제 이미지’를 뜻합니다.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판화, 제프 쿤스의 반짝이는 풍선 강아지가 바로 시뮬라크르입니다. 그것들은 실재(진짜 먼로, 진짜 풍선)를 대체하여 우리 앞에 놓인 매혹적인 사물들입니다.
- 시뮬라시옹(Simulation) – “어떻게 가짜가 진짜를 지배하는가?” 시뮬라시옹은 과정이자 체계, 즉 동사입니다. 시뮬라크르들이 모여 현실을 집어삼키고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작동 원리’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SNS에 올린 보정된 사진이 시뮬라크르라면, 그 사진 속의 ‘완벽한 나’를 유지하기 위해 현실의 내가 다이어트를 하고 성형을 하며 사진 속 이미지에 삶을 맞추는 현상, 즉 이미지가 현실을 리드하는 과정이 바로 시뮬라시옹입니다.

이미지의 4가지 변주: 실재를 배신하는 탐미적 단계
보드리야르는 이미지가 실재와 맺는 관능적인 관계가 파편화되는 과정을 네 단계의 변증법으로 분석했습니다.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렌즈를 통해 이 단계를 들여다봅시다.
- 제1단계 (반영): 이미지가 심오한 실재를 투명하게 반영합니다. (초창기 사진이 지닌 기록의 가치. 풍경을 있는 그대로 담으려 노력합니다.)
- 제2단계 (왜곡): 이미지가 실재를 은폐하고 불온하게 왜곡합니다. (미적 쾌감을 위해 구도를 비틀고 채도를 높여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만듭니다.)
- 제3단계 (가장): 이미지가 실재의 ‘부재’를 교묘하게 감춥니다. (수백 장의 사진을 디지털로 합성하여,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초현실적 질서’를 창조합니다. 관객은 이것이 가짜임을 잊고 환상에 빠집니다.)
- 제4단계 (순수 시뮬라크르): 이미지는 마침내 실재와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고 독립합니다. 이제 우리가 믿는 ‘아름다운 풍경’의 기준은 거스키의 사진이 됩니다. 실제 자연을 보며 “사진보다 별로네”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이미 4단계에 도달한 것입니다.
이 궁극의 단계에 도달하면 이미지가 곧 유일한 현실, 즉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로 군림하게 됩니다.
생성된 하이퍼리얼리티: 알고리즘이 빚은 완벽한 세계
시뮬라시옹 체제의 종착역은 실재보다 더 생생하고 매혹적인 ‘초과잉 현실’입니다. 여기서 AI가 생성한 가상은 비루한 실재를 조롱하며 ‘우월한 현실’로서 우리를 통치합니다.
- 생성형 AI의 오토-시뮬라시옹: 인공지능이 생성한 이미지는 시뮬라시옹의 가장 현대적이고도 서늘한 변주입니다. 실재하는 대상을 촬영하는 대신, 수억 개의 데이터를 학습한 알고리즘이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환상을 무한히 연산해냅니다. 이제 인간의 눈은 카메라 렌즈가 포착한 진실보다, AI가 빚어낸 무결점의 미학을 진실의 척도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원본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이 디지털 유령들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실재가 되어 세상을 재설계하고 있습니다.
- 시네마틱 가상의 침공: ‘Sora’와 같은 생성형 비디오 AI는 물리적 법칙마저 시뮬라시옹의 영역으로 끌어들입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도시를 걷는 가상의 인물, 촬영된 적 없는 장엄한 풍경의 동영상은 인간의 망막을 유혹하여 ‘경험하지 않은 기억’을 주입합니다. 우리가 본 것이 픽셀의 연산인지 빛의 반사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영상이 주는 감각적 충격이 실재의 경험을 압도하기 때문입니다.
스트리밍의 유혹: 가짜 경험에 매료되는 이유
시뮬라시옹은 저급한 강압이 아닌, 고도로 정제된 ‘유혹’을 통해 작동합니다. 거울 속의 나는 늘 불완전하고 초라하지만,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쇼츠와 릴스 속의 하이퍼리얼리티는 결점 없이 매끈합니다.
- 대리된 삶의 숭고함: 우리는 유튜버가 창조한 편집된 일상과 AI가 매만진 가상의 브이로그를 보며 기묘한 대리 만족과 안도감을 느낍니다. 날것의 현실은 피로하지만,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된 영상 속 세계는 언제나 우리를 환대합니다. 관객은 이제 자신의 평범한 일상보다, 스마트폰 화면 너머의 ‘질서 정연한 가짜 삶’을 수호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자본을 지불합니다. 실재가 가상의 영상을 보조하는 배경으로 전락하는 순간, 시뮬라시옹의 미학적 승리가 완성됩니다.

알고리즘의 거울 방을 나서며
보드리야르는 현대인이 원본 없는 복제물들로 둘러싸인 ‘무한한 거울의 방’에 유폐되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제 그 거울은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이라는 형태로 진화하여,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을 선별하고 생성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픽셀과 데이터로 설계된 ‘이미지의 유희’임을 자각하는 찰나의 시선만이 우리가 실재의 파편이라도 움켜쥘 수 있는 마지막 구원이 될 것입니다. 시뮬라시옹이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AI가 선사하는 이 무결점의 안락사를 거부하고, 비로소 불완전하고 고통스러운 실재의 손을 잡을 용기가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