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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News

악몽의 테마파크-디즈멀(?)랜드 by 뱅크시(Banksy)

디즈니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복수극

2015년 여름, 세계는 하나의 ‘악몽 같은 테마파크’에 집중했다. 이곳은 입구부터 수상하다. 경찰 복장을 한 직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가방을 검사한다. 반겨주는 미키 마우스 대신, 너덜너덜한 옷을 입은 광대가 ‘기다리라’며 쏘아본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금방 무너져내릴 것 같은 신데렐라의 성이 위태롭게 서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불쾌한 경험을 위해, 당신은 티켓을 샀다.

그 이름은 디지멀랜드(Dismaland) —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Banksy)가 만든, 유토피아의 가면을 벗겨낸 디스토피아적 안티-디즈니랜드였습니다.

I'm Not Going to Dismaland | The New Yorker

“삶은 디즈니가 아니다”

“이건 가족 친화적이지 않습니다.”

뱅크시는 개장 선언문에 그렇게 못 박았습니다. 디지멀랜드는 영국 웨스턴슈퍼메어(Weston-super-Mare)의 버려진 수영장에서 열렸습니다. ‘꿈과 환상의 나라’ 미국 디즈니랜드를 패러디한 ‘디즈멀랜드(Dismaland)’. 디즈니랜드에 ‘음산하다’는 뜻의 영어 단어 ‘Dismal (디즈멀)’을 합성한 이름입니다. 모든 면에서 이곳은 디즈니랜드와는 반대입니다. 

폐허가 된 공간, 우울한 분위기, 예쁘고 밝은 것은 철저히 금지된 곳. 이 프로젝트는 2015년 8월부터 5주간 단 36일 동안 운영되었고, 그 짧은 기간 동안 15만 명이 방문하며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숫자’로 보자면 결과는 매우 성공적입니다. 적어도 그가 예상한 집객 수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디스멀랜드에 불쾌함을 느끼고 돌아갔을 것이입니다.

아이러니하면서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디스멀랜드는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는 데 목적을 둔 놀이공원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곳은 약 한 달간 세계에서 가장 불쾌한 관광지죠.  ‘Dismal’은 ‘음침한, 우울한’이라는 뜻. ‘디지멀랜드’는 이름부터 디즈니랜드(Disneyland) 를 조롱합니다. 뱅크시는 어린 시절 누구나 꿈꾸는 이상향, 마법 같은 세계가 사실은 자본주의와 환상으로 포장된 기만이라고 외쳤습니다.

인류 사회의 폐부를 찌르고 풍자로 가득한 이곳에 무턱대고 아빠 손을 잡고 따라온 아이들은 순수한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거대하고도 냉소적인 아트 쇼는, 사실 뱅크시가 지금까지 견지해온 모든 계급적 지배(hierarchy)를 부정하며 그것들을 해소하려고 하는 사회·정치사상 아나키즘(Anarchism)의 확장입니다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연스레 한 가지 의문에 도달합니다. 뱅크시는 왜 대규모의 테마파크를 만들면서까지 자신의 철학을 설파하려 했을까요?

Welcome to Dismaland: A First Look at Banksy's New Art Exhibition Housed  Inside a Dystopian Theme Park — Colossal

“이곳엔 해피엔딩이 없다” — 작품들이 말하는 오늘의 사회

디지멀랜드는 58명의 아티스트, 그중에는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제니 홀저(Jenny Holzer), 제프 길렛(Jeff Gillette) 등 유명 작가들도 참여해 1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작품들은 인간의 불안, 환경 파괴, 난민 문제, 소비주의, 국가 감시 등을 파헤쳤습니다.

뱅크시의 작품인 신데렐라 마차는 전복되어 있고 신데렐라는 죽었다. 그 주변에는 수많은 파파라치들이 신이난듯 사진을 찍는다.
→ 다이애나비의 비극을 연상케 하는 이 작품은, 유명인의 죽음조차 소비되는 방식을 꼬집습니다.

Bansky's Dismaland park has Cinderella crash sculpture echoing Diana's  death | Daily Mail Online

뱅크시의 또다른 설치물인 난파선에 탄 난민 인형들과 이를 지켜보는 관람객, 그리고 ‘아기 찾기 게임’
→ 유럽의 난민 위기를 소비 가능한 게임으로 패러디, 극단적인 도덕적 딜레마를 마주하게 합니다.

디지멀랜드의 마지막 반전: 폐장 후 모든 자재는 난민촌으로 이동

더 놀라운 건 폐장 이후였습니다. 디지멀랜드는 단지 ‘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뱅크시는 이 테마파크를 해체하고, 모든 건축 자재와 구조물을 프랑스 칼레 난민촌에 보내 캠프 건설에 사용했습니다. 전시로 비판했던 세계를 직접 ‘건설’로 보듬는 퍼포먼스, 그것이 뱅크시식 종결입니다.

뱅크시는 오랜 시간 자신의 거리 예술을 통해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정부와 미술계 일각에 일침을 날렸습니다. 디스멀랜드는 그런 뱅크시의 철학을 테마파크의 형태를 빌어 집대성한, 본인의 작업 중에서도 유례 없는 최대 규모의 도전인거죠. 디스멀랜드를 추후 난민 수용소를 만드는 데 사용할 계획까지 세워둔 그의 의도에서는 지금껏 그래 왔듯, 예술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사회운동가적 기질이 잘 드러납니다. 

디즈니 측은 이 전시에 대해 공식 반응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 언론과 예술계는 디지멀랜드에 ‘반문화의 전당’, ‘21세기 가장 도발적인 프로젝트’, ‘디지털 시대의 게릴라 미술’이라는 찬사를 쏟아냈습니다. 반면 몇몇 보수 언론은 이를 두고 ‘사회불만을 상업화한 쇼’, ‘지나친 정치적 올바름’이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뱅크시는 이 모든 반응마저 예술의 일부로 삼았습니다.

Dismaland: 4 Powerful Reasons Why the Dystopian Banksy Theme Park Still  Resonates Today | Maddox Gallery

결론: “당신은 어떤 세계에 살고 있습니까?”

디지멀랜드는 질문입니다. 그 질문을 감상하든, 불편해하든, 무시하든 간에 —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습니다.

뱅크시는 디지멀랜드를 통해 ‘예술은 세상의 구경꾼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당신이 미키 마우스를 떠올리는 순간마다, 그 뒤에 숨어 있는 현실의 불편함을 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

“즐거웠나요? 그렇다면 그건 디지멀랜드의 실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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