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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반항, 뱅크시의 정체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

도시의 벽에 남겨진 단 한 장의 스텐실 그림이 언론을 뒤흔들고, 수백만 달러의 경매를 뒤집습니다. 정체를 철저히 숨긴 채 세계 미술계를 농락한 인물, 뱅크시(Banksy). 그는 단순한 그래피티 작가가 아닌, 현대 미술사의 가장 위험한 익명 혁명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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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스틀에서 태어난 그림자

뱅크시의 뿌리는 영국 브리스틀입니다. 1990년대, 힙합과 레이브, 언더그라운드 그래피티 문화가 뒤섞인 거리에서 그는 이름 없는 낙서꾼으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뱅크시는 단순한 태깅을 넘어서, 정밀한 스텐실 기법으로 경찰의 시선을 따돌리며 빠르게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는 익명성을 무기로 삼은 예술 전략이었고, 훗날 그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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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스틀 뱅크시 지도

첫 번째 용의자, 로빈 건닝엄

언론이 가장 집요하게 좇는 이름은 로빈 건닝엄(Robin Gunningham)입니다. 브리스틀 출신의 거리 예술가인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뱅크시로 지목되어 왔습니다. 2016년에는 런던 퀸 메리 대학 연구팀이 ‘지리적 프로파일링’을 통해 뱅크시 작품의 위치와 건닝엄의 생활 반경이 놀랍도록 일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과학적 추적마저 그를 뱅크시로 지목했지만, 당사자는 지금껏 단 한 마디의 인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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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건닝엄(Robin Gunningham)

매시브 어택과의 음모론

그러나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갑니다. 브리스틀 출신 밴드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의 멤버 로버트 델 나자(Robert Del Naja)가 사실상 뱅크시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됩니다. 델 나자는 젊은 시절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활동했으며, 매시브 어택의 투어 일정과 뱅크시 작품의 출현 시점이 묘하게 겹친다는 사실이 팬들의 ‘음모론’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한 영국 기자는 이를 두고 “뱅크시는 사실 델 나자의 또 다른 프로젝트일 수 있다”라고까지 언급했습니다.

Is Robert Del Naja the real Banksy? Massive Attack member is named as  graffiti artist | Daily Mail Online

혹은, 뱅크시는 여성일까?

더 파격적인 설도 있습니다. 여성 작가설입니다. 뱅크시의 작품이 자주 사회적 약자, 난민, 여성과 아이들의 시선에 주목한다는 점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그의 정체가 남성일 것이라는 가정 자체를 의심합니다. 뱅크시가 단일 인물이 아니라 여러 작가가 함께 움직이는 집단적 가면일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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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드러날 수 있는 얼굴

뱅크시의 가장 큰 무기는 익명성이지만, 법적 분쟁은 그의 정체를 드러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위협으로 꼽힙니다. 그의 작품은 이미 세계 경매 시장에서 수천만 달러 규모로 거래되고 있으며, 이를 둘러싼 저작권과 상표권 문제는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2020년 유럽연합 지식재산청(EUIPO)은 뱅크시의 대표작 <꽃 던지는 남자(Flower Thrower)> 상표권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익명으로 활동하는 이상, 작품을 법적으로 보호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 판결은 곧, 정체를 밝히지 않는 한 뱅크시는 자신의 예술을 지식재산으로 지킬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뱅크시가 만약 저작권이나 상표권을 지키기 위해 법정에 직접 서야 한다면, 그의 신분은 강제로 노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Fotobehang - Banksy - Flower thrower, raw concrete - Wallpaper

또한 영국 뉴스 매체 <가디언>은 “미술품 수집가 2명이 뱅크시 회사 ‘페스트 컨트롤’과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페스트 컨트롤은 2008년 뱅크시가 설립한 회사로, 뱅크시 공식 작품 공식 기관이자 작품 판매를 주관하는 곳이죠. 소송을 낸 인물들은 2020년, 뱅크시 작품 수집가의 유품 중 ‘원숭이 여왕’을 한화로 약 5천89만원에 구입했다. 이후 진품 여부를 페스트 컨트롤에 의뢰했으나 3년간 응답이 없자 계약 위반으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또한 이 재판이 진행될 경우 재판 결과에 따라 뱅크시의 본명 등이 밝혀질 가능성이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습니다. 즉, 예술적 익명성이 무너지는 순간은 법정에서 찾아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Pest Control: Verifying Banksy Prints for Buyers and Sellers
뱅크시의 회사 ‘페스트 컨트롤’ 로고

얼굴 없는 메시지

아이러니하게도, 뱅크시의 ‘얼굴 없음’은 그의 가장 강력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정체에 대한 무수한 추측과 논란이 이어질수록, 그는 더 강력한 신화로 자리 잡습니다. 뱅크시의 이름은 이제 한 개인의 신분증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에 맞서는 새로운 예술의 무기가 되었습니다.

그가 로빈 건닝엄이든, 로버트 델 나자든, 혹은 전혀 다른 인물이든, 뱅크시는 이미 얼굴 없는 혁명의 아이콘입니다. 결국 뱅크시의 정체란 이름이 아니라, 저항과 풍자의 익명성 그 자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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