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 데블린이 창조한 '세 번째 시', 푸투라 서울
푸투라서울, 백 개의 시(100 Poems) 그 세 번째 문장
전통의 숨결이 살아있는 북촌의 정취와 현대적 감각이 공존하는 곳, 푸투라서울(Futura Seoul)이 다시 한번 예술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푸투라서울의 야심 찬 기획 프로그램인 ‘백 개의 시(100 Poems)’는 전시 하나를 한 편의 시로 바라보고, 마치 100개의 시를 써 내려가듯 예술적 연대기를 이어가겠다는 숭고한 발상에서 출발했습니다.

데이터의 시인 레픽 아나돌(Refik Anadol), 빛의 조각가 안소니 맥콜(Anthony McCall)에 이어, 이 장엄한 서사의 세 번째 장을 장식할 주인공으로 세계적인 아티스트 에스 데블린(Es Devlin)이 선정되었습니다. 그녀의 한국 첫 대규모 개인전인 《세 번째 시: 에스 데블린(3rd Poem: Es Devlin)》은 단순한 전시를 넘어, 서울의 역사적 맥락 위에서 펼쳐지는 가장 동시대적인 시각적 향연입니다.

영문학적 상상력에서 무대 디자인의 정점으로
에스 데블린의 작업이 지닌 문학적 깊이는 우연이 아닙니다. 영국 브리스톨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녀는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예술 기초 과정을 거치며 조형적 언어를 익혔습니다. 이후 전설적인 ‘모틀리 시어터 디자인 코스’에서 무대와 의상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수련하며, 자신이 사랑하는 언어와 음악, 그리고 사물을 만드는 행위를 ‘무대’라는 하나의 형식 안에서 엮어내는 독창적인 방법을 발견합니다.
1990년대 중반 소극장 무대에서 출발한 그녀의 발자취는 곧 로열 내셔널 시어터, 로열 오페라 하우스 등 세계 최고의 무대로 뻗어 나갔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비욘세(Beyoncé), 아델(Adele), 레이디 가가(Lady Gaga), 위켄드(The Weeknd), 예(Ye), 그리고 밴드 U2의 월드 투어를 설계하며 동시대 공연 디자인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언어와 AI가 빚어낸 집단의 시, Poem Pavilion
데블린의 작업은 공연장을 넘어 공공 건축의 영역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2021년 두바이 엑스포에서 선보인 영국관 ‘Poem Pavilion’은 그녀가 영국관을 설계한 최초의 여성 디자이너로 기록된 역사적인 프로젝트입니다. 그녀는 건물 자체를 하나의 ‘언어 장치’로 구상했습니다. 관람객이 남긴 단어들을 AI가 수집해 집단 시로 만들고, 이를 20m 높이의 LED 파사드에 실시간으로 띄웠습니다. 빛과 언어, 그리고 공동체라는 핵심 개념이 하나의 공간 안에 응축된 이 작업은 그녀의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멸종 위기 종을 위한 거대한 대성당, 생태에 대한 응답
최근 데블린의 시선은 생태계와 인류의 공존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2023년 밴드 U2와 협업해 라스베이거스의 혁신적 공연장 ‘스피어(Sphere)’ 개관을 기념하며 선보인 설치 작업은 네바다주의 멸종 위기 종을 주제로 한 거대한 대성당 같은 공간을 연출했습니다. 거대한 스크린과 공간 전체를 하나의 생태 시스템으로 바라보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을 만들어냈죠.
이러한 문제의식은 2022년 테이트 모던 외벽에 설치된 ‘Come Home Again’에서도 드러납니다. 런던에 서식하는 멸종 위기 종 250종을 드로잉으로 기록해 설치하고, 지역 디아스포라 합창단의 목소리를 더해 하나의 풍경으로 엮어냈습니다. 빛과 이미지, 공동의 목소리가 만나는 이 작업 역시 데블린이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언어와 생태, 공동체라는 주제를 확장한 사례입니다.

2025년의 신작, 빛의 도서관(Library of Light)
올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공개된 ‘Library of Light’(2025)는 데블린의 최근 대표작으로 손꼽힙니다.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중정에 설치된 지름 18m의 거대한 회전형 원통 구조 안에는 3,200권의 책이 담겨 있습니다. 낮에는 햇빛을 반사하고 밤에는 스스로 빛나는 이 ‘빛의 도서관’은 도서관을 단순한 저장소가 아닌, 읽기와 사유가 공명하며 확장되는 집단의 공간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전시 후 책들이 밀라노 공공도서관에 기증되었다는 점은 조각과 빛, 그리고 공공성을 결합하는 그녀의 따뜻한 시각을 대변합니다.
북촌 골목에서 만나는 공동체의 순간
무대와 도시, 건축과 언어, 빛과 공동체를 하나의 감각으로 엮어온 아티스트 에스 데블린. 그녀의 세계가 이제 서울 북촌의 골목과 풍경 속에서 펼쳐집니다. 푸투라서울의 공간 속에서 전개되는 그녀의 시그니처 프로젝션 매핑과 조각적 구조물들은 럭셔리 아트가 지향해야 할 정점, 즉 ‘단순한 소유를 넘어선 압도적인 경험의 가치’를 완벽하게 구현해냅니다.
전시의 타이틀인 ‘세 번째 시’는 텍스트(첫 번째)와 독자의 상상력(두 번째) 사이의 빈 공간에서 탄생하는 ‘공간적 체험’을 의미합니다. 데블린은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들을 정적인 관찰자가 아닌, 시의 일부로 초대합니다. 관객이 직접 참여해 하나의 장면과 사유를 함께 만들어가는 그 공동체의 순간을 이번 전시에서 직접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EXHIBITION INFO
- 전시명: 세 번째 시: 에스 데블린 (3rd Poem: Es Devlin)
- 장소: 푸투라서울 (Futura Seoul), 서울 종로구 북촌로
- 기간: 2024.09.04 ~ 2024.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