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의 비밀 아지트-신도시
낮과 밤이 뒤섞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실험과 향연
서울 한복판, 창고와 공구상가가 줄지어 선 을지로. 밤이 되면 상점들은 셔터를 내리고 거리는 텅 빈다. 하지만 이곳 어딘가, 네온사인 하나 없이도 은밀한 빛을 발하는 공간이 있다. 이름부터 의미심장한 ‘신도시’
이곳은 미술가, 디자이너, 음악가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제3의 세계입니다. 바(Bar)도 아니고, 갤러리도 아니며, 클럽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공존하는 곳. 새벽 3시에도 술잔이 오가고, 누군가는 한쪽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며 작업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갑자기 악기를 꺼내 연주를 시작합니다. ‘신도시’에서는 밤낮의 경계도, 평일과 주말의 개념도 없습니다.

신도시의 탄생: 사라진 게이바가 되살아나다
‘신도시’라는 이름은 사실 오래전 문을 닫은 한 게이바의 간판에서 떼온 것입니다. 운영자들이 한때 눈여겨보던 간판이었는데, 그 가게가 문을 닫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에도 간판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버려진 간판을 떼어올 때 한 노인이 조용히 알려주었습니다. “거기, 원래 게이바였어요. 20년 전에 문 닫았지.”
그렇게 ‘신도시’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사라진 공간의 기억을 품고, 새로운 세대의 예술가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 폐자재와 유령 가구로 완성된 공간
신도시의 내부는 여느 카페나 바와는 전혀 다릅니다. 손때 묻은 한약재 보관용 서랍, 버려진 나무 조각들, 휘어진 불량 테이블과 의자들이 독특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때 예배당에서 신도들을 받쳐주던 장의자들이 테이블과 바(bar)가 되었고, 거리에서 주워 온 폐자재들이 조립되어 벤치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운영자들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현대미술가인 이병재 씨와 사진작가인 이윤호 씨가 운영하고 있는 이곳은 기존의 미술 시스템에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살아남을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이들은 평범한 공간 대여가 아니라, 진짜 ‘살아 숨 쉬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무엇보다 ‘자생’하고 싶어요. 신도시는 생계형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저희뿐만 아니라 친구들과도 마음껏 작업하고 싶었어요.”


🎶 무대와 관객이 뒤섞이는 밤: 신도시의 예술 실험
신도시에서 열리는 행사들은 기존의 전시나 공연과는 다릅니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고, 관객도 어느 순간 퍼포머가 됩니다. 예약을 통해 진행되는 공연, 파티, 워크숍, 팝업키친뿐만 아니라 옥상에서 필름 상영회까지 가능하죠. 이곳에서는 기성 예술계에서 다루지 않는 독립 음악, 실험적 전자음악, 즉흥 퍼포먼스 등이 자유롭게 펼쳐집니다. 어떤 날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DJ가 등장하고, 또 어떤 날은 영화 상영이 끝난 후 뜬금없는 토론이 벌어집니다. 이곳에 오면 ‘계획된 경험’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순간’과 마주하게 됩니다.
5층은 술집인 동시에 공연이나 전시를 하는 복합적인 공간이지만, 바로 아래층은 일반적인 사무실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책과 음악 앨범을 만드는 등 여러 창작 활동을 이어나갑니다. 이는 신도시라는 공간 자체가 처음에는 술집과 작업실의 공존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한것이죠. 두 운영자는 이 공간에 작업에 필요한 여러 기기를 갖다 놓고 작업 공간 겸 돈을 벌 수 있는 장소로 운영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우리 공간은 ‘지속 가능한 실험’을 위한 곳입니다. 자본 없이도 살아남는 방법, 예술이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를 계속 실험하고 있어요.”

🌆 신도시가 던지는 질문: 예술 공간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운영자들은 기존의 상업적 공간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존’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바(bar)도 운영하고, 출판사와 레이블을 병행하며, 스스로의 생계를 꾸려가는 방식이다. 이들은 단순히 예술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려 합니다.
“버려지고 방치된 것들을 줍고 얻고 자르고 붙여 만들었어요. 근검절약 콘셉트랄까요?”
이러한 태도는 기존 미술 시장의 시스템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입니다.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며 전시를 여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 스스로 운영하는 지속 가능한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

예술가의 생존 실험
신도시는 단순한 작업실을 넘어, 작가와 관객이 공간을 직접 만들고, 예술을 실험하며,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합니다. 낮과 밤이 구분되지 않는 이곳에서, 예술가들은 기존의 미술 시스템에 도전하며,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신도시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단 하나입니다.
“예술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운영자들은 단순히 ‘전시 공간’이나 ‘행사 대관’을 넘어서, 자기 자신을 유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바(bar)를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독립 출판을 병행하며, 아티스트 레지던시 형식으로 공간을 순환시키기도 합니다. 이곳의 구조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합니다.
그리고 이 실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