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삶의 경계를 허물다, 요셉 보이스와 ‘사회적 조각’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Every human being is an artist).”
20세기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영향력 있는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1921-1986)일 것입니다. 중절모를 쓰고 낚시 조끼를 입은 독특한 외양의 이 예술가는 단순히 아름다운 물건을 만드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사회 구조’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조각품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예술을 미술관 밖으로 끌어내어 삶 전체로 확장시킨 그의 혁명적인 사상을 일반인의 시선에서 쉽고 상세하게 풀어봅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피어난 예술, 지방과 펠트의 신화
요셉 보이스의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겪은 극적인 생애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조종사였던 보이스는 1944년 크림반도 상공에서 추락 사고를 당합니다. 온몸이 부서지고 의식을 잃은 그를 구한 것은 그 지역의 유목민인 타타르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빈사 상태의 보이스를 발견해 동물 지방(Fat)을 온몸에 바르고 펠트(Felt) 담요로 감싸 체온을 유지하며 그를 살려냈습니다. 이 기적 같은 경험은 보이스에게 평생의 예술적 자산이 됩니다.
- 지방: 열에 의해 녹고 굳는 가변적인 에너지를 상징합니다.
- 펠트: 온기를 보존하고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치유를 상징합니다.
이후 그는 미술관 바닥에 지방 덩어리를 쌓아두거나 펠트로 피아노를 감싸는 등 기이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이는 단순히 ‘이상한 짓’이 아니라 현대 문명으로 상처받은 인간성을 ‘치유’하고 ‘재생’시키겠다는 강력한 메시지였습니다.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 창조적 주권 선언
보이스가 남긴 가장 유명한 말인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는 종종 오해를 받곤 합니다. “모두가 화가나 조각가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이스는 인간이 가진 ‘창조적 잠재력’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간호사가 환자를 돌보는 일,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일, 혹은 정치인이 제도를 만드는 일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창조적 행위’라고 보았습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우리는 단순히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함으로써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예술가적 주권자’인 것입니다.
대표작으로 보는 메시지 – 소통과 치유의 퍼포먼스
보이스의 예술은 정적인 사물을 넘어 역동적인 ‘행위’로 이어집니다. 그의 사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또 다른 대표작은 1974년 뉴욕에서 진행된 퍼포먼스 <코요테: 나는 미국을 좋아하고 미국은 나를 좋아한다>입니다.
보이스는 미국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펠트 담요에 싸여 들것에 실린 채 갤러리로 이동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야생 코요테 한 마리와 함께 3일 동안 우리 안에서 생활했습니다. 코요테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신성한 존재였으나, 백인 이주민들에게는 교활한 유해 동물로 전락한 상징적인 동물이었습니다.
- 상처 입은 관계의 회복: 보이스는 코요테와 눈을 맞추고, 펠트 담요를 공유하며 서서히 교감해 나갔습니다. 이는 백인 문명이 파괴한 원주민의 정신,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깨진 관계를 예술을 통해 ‘치유’하려는 시도였습니다.
- 예술가의 역할: 그는 예술가가 단순히 작품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의 갈등을 중재하고 서로 다른 존재를 연결하는 ‘샤먼(주술사)’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4. ‘사회적 조각(Social Sculpture)’: 우리가 빚어가는 세상
그렇다면 보이스가 말한 ‘사회적 조각’이란 무엇일까요? 보통 조각가는 찰흙이나 돌을 깎아 형태를 만듭니다. 하지만 보이스는 ‘인간의 사고(Thought)’가 가장 중요한 조각의 재료라고 보았습니다.
- 눈에 보이지 않는 조각: 사람들이 서로 대화하고, 아이디어를 나누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법과 제도를 바꾸는 과정 자체가 사회를 조각하는 행위입니다.
- 실천의 예 – 7,000그루의 참나무: 1982년 보이스는 독일 카셀의 황폐해진 도시에 참나무 7,000그루를 심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나무 한 그루 옆에 현무암 기둥 하나를 세웠는데, 나무가 자랄수록 돌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게 됩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나무를 심는 것을 넘어,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도시의 생태계를 바꾸고 미래를 조각하는 ‘살아있는 조각’의 전형을 보여주었습니다.

왜 지금 요셉 보이스인가?
보이스는 예술이 박물관의 유리장 안에 갇혀 있는 것을 혐오했습니다. 그는 예술이 정치, 경제, 환경 등 실제 삶의 문제와 결합할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 공동체의 붕괴, 그리고 무력감 속에서 보이스의 사상은 다시금 빛을 발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오늘 어떤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내뱉은 그 말이, 당신이 행한 그 행동이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조금 더 따뜻하게 조각하고 있습니까?”
예술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내딛는 모든 발걸음이 바로 요셉 보이스가 말한 진정한 예술의 시작입니다.
“조각은 결코 끝난 것이 아니다. 조각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에 있으며, 그것은 인간의 사고 안에서 계속되어야 한다.” — 요셉 보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