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 위작 사건① 거장의 숨결인가, 정교한 복제인가
위작 논란의 서막
아름다움이 자본과 결탁할 때, 예술은 종종 기만의 도구가 되곤 합니다.
2015년 6월, 대한민국 미술의 심장부인 인사동에서 은밀하게 유통되던 이우환 화백의 대표작 <점으로부터>와 <선으로부터> 시리즈에 대한 첩보가 경찰에 입수되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의 정수를 담았다는 이 작품들은 점당 수억 원을 호가하며 컬렉터들의 손을 옮겨 다녔지만, 그 필치 아래에는 거장의 숨결이 아닌 정교하게 설계된 범죄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경찰은 1년여의 끈질긴 추적 끝에 위작으로 의심되는 13점의 작품을 확보했고, 이는 곧 한국 현대 미술사를 뒤흔들 거대한 균열의 서막이었습니다.

국과수의 진단과 부인할 수 없는 데이터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등판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차가운 데이터로 작품을 해부했습니다. 안료의 성분 분석, 캔버스 천의 직조 방식, 그리고 작가 특유의 서명 패턴을 정밀 대조한 결과, 압수된 13점 모두 부적합 판정을 받았습니다. 특히 진품에서는 발견될 수 없는 현대적 화학 성분과 인위적인 노화 공정이 과학의 망막에 포착되었습니다. 경찰은 이를 바탕으로 위작 조직을 검거하며 사건을 일단락 짓는 듯 보였으나, 진짜 혼란은 그 이후에 시작되었습니다.

작가의 고백과 무너진 감정의 권위
2016년 6월, 직접 감정에 나선 이우환 화백은 세상을 경악케 하는 선언을 합니다.
“내 작품에는 고유의 리듬과 호흡이 있다. 압수된 작품들에서 나의 호흡을 느꼈다”며 13점 모두를 진품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위조범들이 자백하고 과학적 증거가 가짜임을 가리키는 상황에서, 작가 본인이 위작을 자신의 자식으로 받아들인 이 초유의 사태는 예술의 진위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거장의 직관적 권위와 국가 기관의 과학적 합리성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대중은 실체 없는 진실 앞에서 깊은 혼돈에 빠졌습니다.
![주간한국][커버 스토리] 세계적 거장 이우환의 절규 < 정치 < 기사본문 - 주간한국](https://cdn.weekly.hankooki.com/news/photo/201510/6058006_69152_0902.jpg)
무명 화가의 궁핍과 검은 유혹
범죄의 서사는 늘 결핍에서 시작됩니다.
2011년, 신혼의 단꿈보다 가난의 무게가 더 컸던 무명 화가 이씨에게 화상 현모씨가 건넨 제안은 달콤한 독배였습니다. 거장의 작품을 완벽히 복제하여 막대한 수익을 나누자는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모사를 넘어, 이우환의 물성을 훔치기 위한 치밀한 연구로 이어졌습니다. 이들은 일산의 여관방 특실과 고양시의 오피스텔을 전전하며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 채, 오직 캔버스 위의 점과 선에 집착하는 은둔의 연금술사가 되었습니다.
![심층추적] 이우환·천경자 화백 사건으로 본 '위작의 세계' < 사회 < 기사본문 - 월간중앙](https://cdn.m-joongang.com/news/photo/201611/20161122_4_314294.jpg)
석채의 함정과 완벽한 배합의 탐구
이우환의 미학을 재현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독특한 질감을 형성하는 석채였습니다. 현씨와 이씨는 인사동과 홍대 앞의 전문 화방을 이 잡듯 뒤지며 진품과 유사한 광물성 안료를 수집했습니다. 특히 일본 길상(吉祥)사의 석채를 베이스로 삼았으나, 접착력이 없는 돌가루를 캔버스에 고착시키는 과정은 고난도의 실험을 요구했습니다. 아교의 농도가 조금만 어긋나도 안료가 떡지거나 뭉개졌기에, 이들은 수개월간 실패를 거듭한 끝에 아교와 특정 겔을 혼합하여 진품 특유의 도드라진 입체감을 구현하는 황금 비율을 찾아냈습니다.

유리병이 만든 가짜 광택의 비극
그러나 이들을 괴롭힌 마지막 숙제는 진품의 표면에서 감도는 은은한 반짝임이었습니다. 대리석 가루를 섞는 등 온갖 시도를 하던 그들이 발견한 해답은 기괴하게도 유리 음료수 병이었습니다. 빈 유리병을 곱게 빻아 안료에 섞자, 비로소 이우환의 필치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광채가 살아났습니다. 하지만 이 ‘신의 한 수’는 결국 파멸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작가는 결코 사용한 적 없는 유리가루 성분이 국과수의 분석에서 검출되면서, 그들이 쌓아 올린 정교한 허상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