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로버트 라우센버그 (Robert Rauschenberg)
“예술을 만드는 것만이 예술일까?
예술을 없애는 것도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이 충격적인 질문을 던지며 20세기 현대미술의 판도를 뒤흔든 혁명가,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1925-2008년). 그는 일상적인 사물과 예술을 결합하여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하는 ‘콤바인 회화(Combine Painting)’로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린 선구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벌인 가장 충격적인 실험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예술 작품을 ‘지우는 것’으로 새로운 예술을 창조한 사건입니다. 1953년, 그는 예술계의 거장이었던 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의 드로잉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전대미문의 퍼포먼스를 실행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Erased de Kooning Drawing(지워진 드 쿠닝의 드로잉)’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낙서 지우기’가 아닙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예술사에서 가장 도발적인 행위 중 하나입니다.

“거장의 작품을 지운다고? 미쳤다고 생각했다
라우센버그는 추상 표현주의가 지배하던 1950년대 미국 미술계에 회의를 품고 있었습니다.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드 쿠닝 같은 거장들이 예술을 ‘순수한 감정의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에 반발했습니다. 그는 예술이 감정을 표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감정을 ‘해체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대담한 실험을 떠올렸습니다. “예술 작품을 없애는 것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평범한 종이를 지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이미 예술로 인정받은 위대한 작품을 지워야만 진정한 의미를 가질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빌렘 드 쿠닝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1953년, 라우센버그가 그의 문앞에 도착했을 때, 드 쿠닝은 뉴욕시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 예술가였습니다. 드쿠닝의 그림은 굉장히 비쌌고, 한낱 스케치 조차도 금전적, 미술사적 가치가 있었습니다.
*빌럼 데 쿠닝(Willem de Kooning, 1904 – 1997년) : 20세기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이다. 주로 미국에서 활동했던 추상표현주의의 화가로 구상도, 추상도 할 수 없는 표현과 격렬한 필촉이 특색입니다. 드 쿠닝은 잭슨 폴락과 대등한 “액션 페인팅”의 대표적인 작가이고, 추상표현주의의 창시자 중 한명입니다.
“드 쿠닝, 당신의 작품을 지워도 될까요?”
라우센버그는 직접 드 쿠닝을 찾아갔습니다. 27살의 젊은 예술가는 대담하게 “당신의 그림을 지워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드 쿠닝은 처음엔 어이없다는 듯 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라우센버그의 의도를 이해하고,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좋아. 하지만 쉽게 지워질 작품을 줄 순 없겠지.”
드 쿠닝은 연필, 목탄, 크레용으로 덧칠된, 지우기 매우 어려운 드로잉을 직접 골라서 건넸습니다. 그는 이 작업이 쉽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고, 라우센버그가 진정성을 가지고 도전하길 바랐습니다. 라우센버그는 작품을 받은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곧, 지우는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2달 동안의 ‘지우기 전쟁’
작품을 지우는 과정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지난했습니다. 그냥 지우개 몇 번 문지른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 지우개를 갈아가며 계속 문지름
- 연필, 목탄, 크레용이 섞인 흔적을 최대한 제거하려고 애씀
- 완전히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자, 더욱 강한 압력으로 작업
- 2개월에 걸쳐 끊임없이 지우기를 반복
라우센버그는 지우면서도 의문을 가졌습니다. “내가 이걸 지우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예술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
마침내, 드 쿠닝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흰 종이 한 장이 남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종이는 이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을까요? 아니면, 새로운 예술로 탄생한 것일까요?

“지우고 나니, 더 강렬한 작품이 되었다”
라우센버그는 이 종이를 단순히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친구이자 예술가였던 재스퍼 존스(Jasper Johns)에게 이 작업을 공식적인 작품으로 만들 것을 제안했습니다.
존스는 액자에 넣고, 아래에 작품명을 적었습니다.
“Erased de Kooning Drawing, Robert Rauschenberg, 1953”
이제, 그것은 단순한 ‘빈 종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지워진 작품’이자, ‘새롭게 태어난 예술’이었습니다.

“이건 예술인가? 아니면 단순한 낙서 지우기인가?”
라우센버그의 ‘지워진 드 쿠닝’은 발표되자마자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 “이건 단순한 파괴 행위다!”
- “그렇다면, 쓰레기통에 버린 종이도 예술이냐?”
- “아니다, 이 작품은 예술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혁명적인 시도다!”
라우센버그는 이 논란을 즐겼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단순히 작품을 지운 것이 아니다. 나는 ‘지우기’라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작품을 창조한 것이다.”
그의 이 실험은 뒤이은 개념미술(Conceptual Art)과 퍼포먼스 아트(Performance Art)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그가 열어놓은 길을 따라, 마르셀 뒤샹, 요셉 보이스, 그리고 이후 현대미술가들이 ‘행위 그 자체를 예술로 인식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예술을 무너뜨린 남자, 그리고 새로운 예술을 창조한 남자
라우센버그의 작업은 단순한 장난이 아닙니다. 그는 예술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그 답을 직접 몸으로 실험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이것도 예술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이미 예술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지워진 드 쿠닝의 드로잉은 정말 예술일까요? 아니면, 그저 지워진 낙서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순간, 여러분은 이미 라우센버그의 예술 세계로 들어온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