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도 예술이 될 수 있는가? 크리스 버든(Chris Burden)
총성이 울린 갤러리
1971년 11월 19일,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아나(Santa Ana)의 작은 실험 예술 공간 F-Space Gallery. 그곳에는 단 8명 정도의 관객이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아무런 안내도, 안전 장치도, 유머도 없었습니다. 크리스 버든은 흰 셔츠를 입고 조용히 벽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친구인 브루스 덴(Bruce Dunne)에게 말했습니다.
“쏴.”
총성이 울리고, 총알이 그의 왼쪽 팔뚝을 스치며 관통했습니다. 피가 셔츠에 번졌고, 공기의 긴장은 더 이상 말로 설명할 수 없었죠.
작품 제목은 단 한 단어.《Shoot》.
그 순간, 미술관의 관객은 ‘관람자’에서 ‘증인’으로 입장이 바뀌었죠.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이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사건, 그리고 그들은 사건의 공범이라는 것을.

왜 그는 자기 팔에 총을 맞았는가
버든은 평범한 예술가가 아니었습니다. 1960년대 후반, TV·전쟁·미디어가 사람들의 현실 감각을 무디게 만들던 시대에 청년으로 살았습니다. 죽음은 뉴스에서 소비되는 이미지였고, 고통은 화면 너머의 일이 되었죠. 그는 이렇게 느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현실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몸을 현실로 끌어오기로 했습니다. 무대가 아닌 자신의 살과 피를 사용해.

버든의 예술은 한 번의 총알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Five Day Locker Piece》(1971)
버든은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 캠퍼스의 학생용 라커 5번 안에 스스로 들어가 문을 잠갔습니다. 라커는 가로 60cm, 세로 40cm, 깊이 45cm. 팔도 다리도 펼 수 없고, 무릎은 턱에 닿는 자세로 단 1cm의 움직임도 허락되지 않은 공간이었습니다.
그는 5일 동안 물도 음식도 거의 섭취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라커 상단에는 한 통의 물, 하단에는 비워야 할 때를 대비한 빈 병이 놓여 있었습니다. 몸은 감옥이 되었고, 숨은 작품이 되었죠. 공기는 점점 탁해지고, 피부는 안쪽에서 타오르고, 심장은 공간의 벽에 직접적으로 닿는 듯한 박동으로 존재를 증명합니다.
관객은 이 작품을 볼 수 없었습니다. 볼 수 있는 것은 닫힌 쇠문 뿐. 예술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만이 작품이었죠.

《Trans-fixed》(1974) — 도로 위의 십자가
1974년 4월 23일, 캘리포니아 벤니스의 한 작은 거리. 버든은 폭스바겐 비틀의 보닛 위에 누웠고, 그의 두 손은 진짜 못으로 관통되어 차체에 박혔습니다. 그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습니다. 침묵 속에서 엔진이 과열되며 내는 굉음만이 울렸습니다. 마치 자동차가 고통을 대신 울부짖는 동물처럼요.
십자가는 자동차로 변형되었고, 예수가 있을 위치에는 크리스 버든이 대체했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은 오직 손바닥에 박힌 못뿐이였죠.
관객은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고통의 현장을 목격하는 사람이 되고, 멀리 서 있으면 신화를 바라보는 증인이 되었죠. 이 장면은 명백했습니다. 현대 문명 = 새로운 십자가, 그리고 예술가는 그 위에 못 박힌 존재.


《TV Hijack》(1972) — 현실을 납치한 방송
지역 공영 방송 인터뷰에서 버든은 평온하게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진행자를 팔로 고정하고 칼을 목에 들이댔습니다. 이는 연출인지 실제 위협인지 아무도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카메라는 목의 긴장과 식도의 떨림과 눈동자의 충격을 그대로 송출했죠. 시청자들은 실시간으로 불안을 시청했습니다. 공포는 TV 화면 속이 아니라 거실 속 공기에 스며들어 버렸습니다. 버든은 방송 중 단 한 문장을 남겼습니다.
“TV는 무엇이 진짜인지 판단하지 않는다. 보여주기만 한다.”

그의 삶은 왜 이렇게 극단으로 기울었는가
버든은 평범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어린 시절부터 위험과 기계, 발명, 전쟁의 이미지에 매혹되어 있었습니다. 1960~70년대 미국은 베트남 전쟁, 켄트 스테이트 총격 사건, 미디어의 폭력 송출이 일상화된 시대였죠.
버든은 말합니다. “폭력이 현실을 지배한다면, 예술도 현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의 예술은 폭력을 찬양한 것이 아니라, 폭력이 이미 세계의 구조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선구자 vs 위험한 광인
평단은 그의 작업을 두 가지 언어로 규정했습니다.
• “신체 예술의 가장 급진적 선구자.”
• “예술을 가장 위험하게 밀어붙인 광인.”
그를 예술의 새로운 장을 연 인물로 인정하는 목소리는 컸지만, 동시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행위를 왜 미술관에서 반복해야 하는가?” 라는 비난도 거셌습니다. 하지만 그의 퍼포먼스는 이후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테리 램, 론 에이덴 등 몸을 매개로 한 현대 퍼포먼스 예술의 흐름에 결정적 영향을 남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