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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속함의 미학 '키치(Kitsch)'에 매혹되다

수억 달러를 호가하는 경매장 한복판, 눈이 시릴 정도로 번쩍이는 분홍색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거대한 ‘강아지 풍선’이 서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게 왜 예술이야? 장난감 아냐?”라고 묻지만, 이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 작가의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고결한 예술의 전당에 당당히 입성한 이 ‘의도된 촌스러움’, 우리는 이것을 키치(Kitsch)라 부릅니다.

과거엔 ‘가짜’ 혹은 ‘싸구려’라며 외면받던 이 불량한 미학이 어떻게 현대 럭셔리 아트의 심장이 되었을까요?

Lexon x Jeff Koons - 컬렉션

키치(Kitsch)란 무엇인가: “가짜가 주는 진짜 즐거움”

오늘날 예술계에서 정의하는 키치는 ‘의도된 촌스러움’입니다. 원래 키치는 고급 예술(High Art)을 흉내 낸 저급한 복제품, 혹은 대중의 천박한 취향에 영합하는 대중 예술을 비하하는 용어였습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 키치는 고정관념을 뒤트는 강력한 예술적 도구가 되었습니다. 너무 진지하고 무거운 예술에 지친 대중들에게 키치는 ‘유머’와 ‘풍자’, 그리고 ‘친숙함’이라는 새로운 미적 쾌락을 선사합니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세련된 취향으로 재해석된 촌스러움이 바로 현대적 의미의 키치입니다.

개념어 사전 - 키치(Kitsch)

쓰레기더미에서 피어난 단어

‘키치’라는 단어의 뿌리는 19세기 중반 독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팔다’라는 뜻의 독일어 ‘verkitschen’ 혹은 ‘먼지를 닦아내다/치우다’라는 뜻의 ‘kitschen’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지배적입니다. 당시 뮌헨의 예술 시장에서 관광객들에게 팔기 위해 값싸게 제작된 조잡한 그림이나 기념품을 일컫는 은어였습니다.

산업 혁명 이후 돈을 벌기 시작한 중산층들이 귀족의 고결한 취향을 흉내 내고 싶어 하자, 그들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대량 생산된 ‘가짜 고급품’들이 키치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당시 엘리트 비평가들에게 키치는 ‘예술의 암세포’와도 같았습니다.

Images in Changing World | DailyArt Magazine

우리가 사랑하는 ‘고급스러운 촌스러움’

오늘날 키치는 미술관을 넘어 런웨이와 거실 한복판을 점령했습니다. 키치를 예술의 반열에 올린 대표적인 예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캠벨 수프와 마릴린 먼지: 팝 아트의 탄생]

앤디 워홀은 슈퍼마켓의 통조림 캔과 대중 스타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복제했습니다. 고급 예술의 유일성을 파괴하고 일상의 평범한(키치한) 소재를 갤러리로 끌어들인 팝 아트는 키치를 현대 미술의 주류로 격상시킨 일등 공신입니다.

Who's Andy Warhol? 7 Famous Andy Warhol Artworks | The Artist

[럭셔리 패션의 키치 열풍: 모스키노]

최근 럭셔리 브랜드들은 키치를 핵심 전략으로 사용합니다. 만화 캐릭터를 수놓은 명품 가방이나, 맥도날드 로고를 패러디한 드레스는 ‘너무 완벽해서 숨 막히는 럭셔리’ 대신 ‘즐길 수 있는 럭셔리’를 제안합니다. 이는 자본주의의 상징을 유희적으로 소비하는 현대인의 감성을 자극합니다.

모스키노의 햄버거 매장에 놀러오세요. | 얼루어 코리아 (Allure Korea)

에필로그: 키치는 죽지 않는다

과거의 키치가 ‘가난한 자의 예술’이었다면, 현대의 키치는 ‘여유로운 자의 유머’입니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모호해진 세상에서, 키치는 우리에게 정답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라고 속삭이며 윙크를 보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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