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색, 초록
서양의 마녀는 왜 초록색 얼굴일까?
뮤지컬 위키드(Wicked) 속 엘파바의 초록빛 얼굴은 단순한 연출이 아닙니다. 아마 분장실에서 색조를 잘못 골랐기 때문은 아닐 겁니다. 서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초록색이 ‘조금 이상하고, 어쩐지 위험한 색’으로 인식돼 왔기 때문이죠. 자연의 색인 동시에, 인간의 세계를 벗어난 듯한 색. 그리고 그 이미지의 배경에는 놀랍게도 진짜 독성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자연의 푸르름을 닮았지만, 한편으로는 질투, 부패, 이상함, 그리고 죽음의 냄새가 섞여 있는 모순된 색. 그리고 그 이면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 하나가 존재합니다. 초록색은… 실제로 죽음을 불렀던 색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아름답고 치명적인 색의 역사를 따라가 봅시다.
세상에 없던 선명한 그린
18세기 스웨덴 화학자 카를 빌헬름 셰엘레는 인류가 꿈꾸던 완벽한 초록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름하여 셸레 그린(Scheele’s Green)이죠. 그 어떤 자연보다 선명한 녹색이었지만, 문제는 이 빛이 구리와 비소의 화합물로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어느 날 저녁,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나폴레옹 3세의 황후 외제니가 숨 막힐 듯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어 다음 날 아침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했다고 합니다. 그 드레스는 눈부시게 짙은 녹색으로, 가스등 아래에서도 색이 변하지 않을 만큼 선명한 색이었습니다. 사교계 여성들은 모두 에메랄드빛 드레스에 열광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기록에 따르면, 초록빛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이 무도회 다음날부터 기침과 구토를 호소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19세기에는 더 강렬한 초록, 파리스 그린(Paris Green)이 등장합니다. 이 색은 셸레 그린을 더욱 안정적이며 변색되지 않도록 고안해낸 색 입니다. 이 색을 유럽 전역에 유행처럼 번졌고, 벽지, 커튼, 드레스, 모자, 신발, 장식품은 물론이고 심지어 아이들 장난감, 파티용 사탕에도 이 색이 사용됐습니다. 파리스 그린으로 만든 염료의 독성은 1822년에 제조법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색소로 염색된 옷을 입는 사람들이 일찍 죽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이 색소의 사용은 중단되었습니다.
초록은 본격적으로 유럽을 장식하는 독(毒)이 되었고, 그 화려한 색은 천천히 사람들의 몸을 파고들었습니다.

조용한 살인자
초록 드레스보다 악명 높았던 것은 초록 벽지였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는 거의 모든 중산층 가정이 ‘멋진 모던 인테리어’를 위해 초록 벽지를 선택했죠. 그러나 벽지의 비소 안료는 습기와 곰팡이와 만나 비소 기체(arsine gas)를 방출했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냄새도 없는 이 기체는 치명적이었고, 아이들과 가사노동자를 중심으로 만성 중독·호흡기 질환·사망이 이어졌습니다. 1830년까지 영국에서 연간 벽지 생산량은 100만 롤로 증가했고, 1870년에는 3천만 롤로 증가했습니다. 이후 실시된 검사 결과 벽지 5개 중 4개에 비소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화학자 레오폴트 그멜린(1788-1853)은 1815년 초부터 벽지가 대기를 오염시킬 수 있다고 의심했습니다. 그는 벽지가 약간 축축하면 그 물질에서 쥐 냄새와 같은 냄새가 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멜린은 사람들에게 방에서 벽지를 벗기라고 경고하고 셸레의 녹색 사용을 금지할 것을 주장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 색을 사랑했습니다. 누구도, 혹은 아마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 결과 백팔십 년 전 유럽의 방안은 ‘초록색 가스실’과도 같았습니다.

오늘날의 초록
오늘날 우리는 초록을 자연·안전·친환경의 색으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한때 유럽 사회를 뒤흔든 숨겨진 독의 역사와, 기묘하게도 더 오래된 마녀·질투·불안의 심리적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초록은 생명과 죽음이 동시에 깃든 색, 욕망과 공포가 한데 엉킨 인간의 가장 모순적인 색입니다.
그리고 그 모순이야말로 초록을 가장 매혹적인 색으로 만드는 이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