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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추락 – 카라바조

1606년의 어느 밤, 이탈리아 로마. 달빛이 희미하게 드리운 골목길에서 두 남자가 격렬히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그리고 부유한 가문 출신이지만 동네 시정잡배 취급을 당하던 토마소니 라누치오.

카라바조는 이미 로마 최고의 화가로 칭송받고 있었지만, 천재성과 폭력성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그의 칼끝이 상대의 몸을 꿰뚫었습니다.이 한 번의 살인은, 그를 시대의 아이콘에서 ‘도망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비극이야말로 그의 예술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습니다.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 나무위키
홀로페르네스를 참수하는 유디트(1598-1599)

신의 손을 지닌 남자, 그러나 악마의 기질을 가진 화가

카라바조는 그는 빛과 어둠을 조각하듯이 표현한 ‘테네브리즘(Tenebrism)’ 기법을 완성시킨 인물로,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캔버스를 찢고 나올 듯한 극적인 현실감을 자랑했습니다. 테네브리즘(Tenebrism)은 서양 회화사 에서 극명한 빛 과 어둠의 대비를 비유적 구성 에 사용하여 극적인 효과를 높이는 것을 말합니다. (라틴어 tenebrae , “어둠”에서 유래)

카라바조의 그림이 기존과 달랐던 이유?

  1. 성경 속 인물들을 신성한 존재가 아닌, 거리의 거친 인간처럼 묘사
  2. 강렬한 명암 대비로 극적인 서사 강조
  3. 기교보다 감정과 서사의 몰입감 중시

16세기 유럽에서는 천군천사가 등장하고 예수나 성모마리아와 같은 성서의 주인공들은 무조건 성스럽고 아름답게 표현되는 등 속된 것과는 거리가 먼 고귀하고 성스러운 것들로 표현되는 종교화가 대다수였습니다. 그러나 카라바조는 단 한번도 그러한 종교화를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의 매우 일상적인 풍경들과 평범한 사람들을 성화의 주인공으로 삼곤 했죠. 어쩌면 지극히 평범하달 수도 없는 뒷골목 매춘부, 건달, 협잡꾼들이 성화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당시 종교계가 받은 충격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속된 것을 성스러운 것으로 승화시킨 카라바조의 작품은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카라바조는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가리켜 ‘저 사람들이 모두 나의 스승’이라 했습니다. 성과 속이 따로 없다는 의미였죠.

그러나 그의 성격 역시 그림만큼이나 극단적이었습니다. 술, 도박, 싸움, 그리고 끝없는 분노. 이 모든 것이 그를 파멸로 몰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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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 (1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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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사기꾼 (1594)

🔪 운명의 밤 – ‘살인자’가 되다

1606년, 로마. 카라바조는 란초 토마소라는 남자와 도박 문제로 크게 다투고 있었습니다. 이날 싸움은 단순한 말다툼이 아니었습니다.
칼이 뽑혔고, 피가 튀었으며, 한 남자가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카라바조가 그를 죽였다!”

이 한순간의 폭발적인 분노로 인해, 카라바조는 로마에서 즉시 사형 선고를 받은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즉시 로마를 탈출했고, 그 뒤로 4년간 이탈리아 전역을 떠돌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림은 더욱 강렬하고, 더욱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카라바조의 초상화

도망자의 삶, 그러나 더 강렬해진 예술

카라바조는 도망치는 동안에도 나폴리 → 몰타 → 시칠리아 → 다시 나폴리 이렇게 유랑하듯 떠돌며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가 머무는 곳마다, 언제나 칼부림, 싸움, 충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대변하듯 자신의 작품에 더욱 어두운 색과 강렬한 대조를 사용하며, 자신의 절망과 광기를 그대로 담아냈습니다.

그가 도피처에서 제작한 그림이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비드>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그림에 묘사된 두 인물에 카라바조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는 점입니다. 도피 중 정적의 습격을 받아 이마에 큰 상처가 나 있던 카라바조의 얼굴은 골리앗의 모습으로 구현됐고 연민의 눈길로 목이 잘린 골리앗을 바라보고 있는 다비드는 젊은 시절 카라바조의 모습과 유사합니다다. 따라서 이 그림 속 장면은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죽이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짙은 자기 환멸과 참회의 의지를 담고 있는 이 그림은 카라바조가 죄를 사면받고자 교황의 조카였던 시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을 위해 그린 작품입니다.

넷플릭스 '리플리: 더 시리즈'에 나오는 카라바조 그림들|예술을 산책하듯 가볍게 즐기는 아트 정보 큐레이션 서비스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비드 (1610)

“나는 신을 그리고 있지만, 내 삶은 지옥이다.”


마지막 순간 – “그의 죽음마저도 수수께끼”

1610년, 카라바조는 로마로 돌아가 사면을 받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 갑자기 그는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그의 시체가 해변에서 발견됩니다.

  • 그의 죽음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 병사들에게 살해당했을 가능성
  • 열병으로 사망했을 가능성
  • 독살되었을 가능성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하나. 그가 남긴 작품들은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결국 시대를 앞서간 천재였고, 동시에 자신의 분노에 사로잡힌 비극적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캔버스 속 빛과 어둠은, 바로 그 자신의 인생을 그대로 투영한 것이었습니다.

“카라바조는 죽었지만, 그의 빛과 그림자는 영원히 남았다.”

토마스의 의심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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