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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조각가들의 비극적인 사랑: 오귀스트 로댕과 까미유 끌로델

19세기 프랑스 조각계를 대표하는 거장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과 그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까미유 끌로델(Camille Claudel, 1864~1943).

두 사람은 뜨거운 사랑과 예술적 교감을 나누었지만, 그들의 관계는 결국 비극적인 파멸로 끝을 맺었습니다.

19살의 카미유 클로델.
오귀스트 로댕.

천재 조각가들의 운명적 만남

1880년대 프랑스 파리. 까미유 끌로델은 17세의 나이로 조각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예술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당시 여성은 미술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불가능했지만, 그녀는 개인 스튜디오에서 조각을 배웠고, 결국 오귀스트 로댕의 작업실에 들어가 그의 조수가 되었습니다.

로댕은 끌로델의 천재성을 한눈에 알아보았고, 그녀에게 조각 기법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강한 예술적 교감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1884년, 단순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넘어 격렬한 사랑으로 발전했습니다. 까미유의 나이 스무살, 로댕의 나이 마흔 셋이였습니다.

(좌) 까미유 끌로델 (우) 끌로델의 화가 친구 기타 테우리에

사랑과 예술적 경쟁

두 사람은 서로의 작업에 깊이 영향을 주었으며, 까미유 끌로델은 로댕의 대표작인 ‘지옥의 문’과 ‘칼레의 시민’ 제작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녀는 로댕의 작품을 보완하고, 때로는 조각 일부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까미유 끌로델은 자신의 작품이 로댕의 명성에 가려지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했습니다. 그녀 역시 뛰어난 조각가였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예술계에서 독립적인 위치를 인정받기 어려웠고, 사람들은 그녀를 단순한 ‘로댕의 조수’로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녀는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싶어 했고, 결국 로댕과의 관계는 갈등으로 변해갔습니다.

노트르담의 아틀리에에서 까미유 끌로델

로댕의 표절

로댕은 클로델의 재능을 질투하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큰 균열이 일어나는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로댕이 클로델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스캔들이 생긴 겁니다. 클로델의 ‘사쿤탈라’(1888)와 로댕의 ‘영원한 우상’(1898)이라는 작품입니다. 격정적인 에너지, 육감적인 포즈 등이 유사하죠.

로댕은 스캔들로 인해 자신의 명성에 큰 타격을 입을까 노심초사했습니다. 그리고 클로델이 작품을 출품하지 못하게 압력을 가해 가까스로 표절 시비를 잠재웠습니다.

로댕이 클로델의 작품 제작을 방해한 적도 있습니다. 클로델의 ‘중년'(1899)이란 작품은 한 여자에게 끌려가는 남자, 그 남자에게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는 또 다른 여자를 표현한 겁니다. 뵈레, 로댕, 클로델의 관계를 고스란히 보여주죠. 그러자 로댕은 이 작품으로 인해 큰 곤욕을 치르게 될까봐, 클로델이 작품을 주물로 완성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다 클로델은 로댕의 아이를 가지게 됐지만, 곧 유산하게 됐는데요. 로댕은 유산까지 한 클로델을 돌보지 않고 내팽개쳤습니다. 결국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졌습니다.

클로델의 ‘사쿤탈라’, 1888, 로댕박물관
까미유 끌로델의 <사쿤탈라>
로댕의 ‘영원한 우상’, 1898, 로댕박물관
로댕의 <영원한 우상>

비극적인 결말: 정신병원에 갇힌 끌로델

1913년, 까미유 끌로델의 가족은 그녀의 정신 상태를 문제 삼아 강제적으로 정신병원에 수용했습니다. 비록 일부 예술가들이 그녀의 석방을 요구했지만, 가족들은 끝까지 그녀를 사회로부터 격리시켰고, 그녀는 30년 동안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동안 로댕은 여전히 프랑스 최고의 조각가로 찬사를 받았고, 1917년 자연사했습니다. 그의 연인이었던 로즈 뵈레는 그가 죽은 2주 후에 사망하며, 두 사람은 나란히 묻혔습니다.

반면 까미유 끌로델은 1943년, 가족의 방문조차 없이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고, 그녀의 무덤에는 아무런 표식도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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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로댕과 로즈 뵈레

뒤늦게 인정받은 천재 조각가, 까미유 끌로델

까미유 끌로델은 사후 수십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녀의 작품이 다시 조명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그녀의 작품들은 로댕과는 전혀 다른 독창적인 조각세계를 보여주며, 특히 ‘왈츠(La Valse)’, ‘성숙(L’Âge Mûr)’ 같은 작품은 그녀의 내면적 고통을 강렬하게 담고 있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88년에는 그녀의 삶을 바탕으로 한 영화 《까미유 끌로델》(Isabelle Adjani 주연)이 개봉하며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오늘날, 그녀의 예술적 업적은 다시금 인정받고 있으며, 파리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까미유 끌로델 미술관’이 개관되어 그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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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2017) / 까미유 끌로델(1988) / 까미유 끌로델 1915(2013)

예술과 사랑, 그리고 파멸

오귀스트 로댕과 까미유 끌로델의 이야기는 단순한 러브 스토리가 아닙니다.
예술적 천재성과 열정, 사랑과 집착, 그리고 시대적 한계 속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드라마입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영감을 주었지만, 결국 파멸을 불러온 숙명의 연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까미유 끌로델의 조각들은 그녀의 고통과 외로움을 담은 채, 세상에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기타 테우리에(Ghita Theuriet)가 그린 카미유 끌로델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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