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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의 미학, 그로테스크(Grotesque)

눈이 세 개 달린 초상화, 해골 위에 피어난 화려한 꽃, 혹은 신체의 일부가 동물의 형상으로 변해가는 조각품. 처음 마주했을 땐 본능적인 거부감에 눈을 찌푸리게 되지만, 이내 그 기이한 형상 속에 감춰진 묘한 위트와 압도적인 디테일에 매료되어 발길을 멈추게 됩니다. “흉측한데 왠지 눈을 뗄 수 없어.” 이것이 바로 현대 예술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미적 장치, 그로테스크(Grotesque)가 가진 치명적인 마력입니다.

완벽한 비례와 매끈한 아름다움을 넘어, 불쾌함마저 유희로 승화시킨 그로테스크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Francis Bacon's unseen revisions revealed in new publication - DACS

“공포와 웃음의 기묘한 동거”

예술사에서 정의하는 그로테스크는 단순히 ‘흉측한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기괴하고 부자연스러운 형상 속에 익살스럽거나 환상적인 요소가 뒤섞인 상태를 일컫습니다.

현대의 그로테스크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허물며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끔찍한 파괴의 이미지 옆에 천진난만한 아이의 웃음을 배치하거나,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을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하는 식이죠. 이 양가적인 감정의 충돌이 관객으로 하여금 기이한 해방감과 미적 쾌감을 느끼게 합니다.

동굴 속에서 발견된 환상적 무늬

‘그로테스크’라는 단어의 뿌리는 15세기 이탈리아의 지하 동굴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5세기 말, 로마의 네로 황제가 세운 궁전 ‘도무스 아우레아(Domus Aurea)’의 유적이 지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동굴(Grotte)이라고 불렀는데, 그 벽면에는 인간과 동물의 몸이 식물의 덩굴과 뒤섞여 기이하게 얽힌 벽화들이 가득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조화와 대칭을 중시하던 예술가들에게 이 무늬들은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이 이질적인 조합의 문양들을 ‘그로테스크한(동굴에서 나온 것 같은)’ 양식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이후 ‘기괴하고 환상적인 양식’을 뜻하는 보편적인 용어가 되었습니다.

Curiosità romane: le grottesche della Domus Aurea | LiveRomeguide

“상처 입은 육체, 그 찬란한 고백”

그로테스크의 미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을 꼽을 수 있습니다.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과 ‘비명 지르는 교황’]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1909~1992)은 20세기 서구 미술사에서 가장 강렬한 ‘그로테스크의 화신’으로 불립니다. 그는 인간의 신체를 고깃덩어리처럼 해체하거나 왜곡하여 표현함으로써, 실존적 불안과 고통을 극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에 따른 연구 (Study after Velázquez’s Portrait of Pope Innocent X, 1953)

이 작품은 벨라스케스의 고전적인 교황 초상을 기괴하게 재해석한 것입니다. 인자해야 할 교황의 얼굴은 투명한 유리관 같은 공간에 갇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문드러져 가고 있습니다. 세로로 흘러내리는 듯한 붓질은 마치 피비린내 나는 도살장의 분위기를 연상시킵니다.

이 작품이 그로테스크의 정수인 이유는 ‘공포’와 ‘권위’의 기묘한 결합 때문입니다. 교황이라는 절대 권력자가 지독한 고통에 일그러진 모습은 보는 이에게 충격적인 불쾌감을 주지만, 동시에 권위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의 기괴한 카타르시스와 블랙 유머를 선사합니다.

Francis Bacon. Study for Portrait VII. 1953 | MoMA

[조지 콘도(George Condo)와 ‘심리적 입체주의’]

미국 현대 미술의 거장 조지 콘도(1957~)는 고전 회화의 기법과 만화적 캐릭터를 결합하여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해학적이고 기괴하게 풀어냅니다. 그는 자신의 스타일을 ‘심리적 입체주의(Psychological Cubism)’라고 명명하며, 한 인물의 얼굴에 기쁨, 슬픔, 광기 등 여러 감정을 동시에 겹쳐 놓습니다.

그의 초상화 속 인물들은 툭 튀어나온 눈알, 뒤틀린 입술, 비정상적으로 부푼 뺨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미키 마우스가 피카소의 화폭에 들어간 듯한 이 기묘한 형상들은 현대인이 겪는 분열된 자아와 고독을 대변합니다.

베이컨의 그로테스크가 ‘비명’에 가깝다면, 콘도의 그로테스크는 ‘냉소적인 웃음’에 가깝습니다. 그는 루브르의 초상화들에서 느껴지는 엄숙함을 비틀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연민을 자아내는 기괴한 인물들을 창조합니다. 이는 오늘날 지드래곤 등 유명 컬렉터들이 열광하는 ‘가장 힙한 그로테스크’의 전형이 되었습니다.

에필로그: 완벽함보다 매혹적인 ‘불쾌한 진실’

오늘날 럭셔리 아트와 패션 하우스(알렉산더 맥퀸, 릭 오웬스 등)들이 그로테스크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완벽함이 줄 수 없는 ‘생명력’ 때문입니다. 정형화된 아름다움은 금세 지루해지지만, 뒤틀리고 왜곡된 그로테스크는 우리의 무의식을 자극하고 질문을 던집니다.

진정한 예술적 안목은 예쁜 것을 보는 눈이 아니라, 기괴함 속에 숨겨진 진실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당신의 컬렉션에 이 ‘우아한 불쾌함’ 한 조각을 들여놓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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