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부의 고백-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고통과 진실이 뒤섞인 자전적 서사
영국 현대미술의 아이콘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1963~)은 자신의 삶을 가장 솔직하게,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 작가입니다. 가난과 가족 해체, 젊은 시절의 방황과 성적 트라우마까지, 그녀는 모든 고통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왔습니다.
트레이시 에민은 1963년 런던 인근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가족 불화와 가난, 그리고 10대의 트라우마를 겪으며 자랐습니다. 터키계 영국인으로 어린 시절부터 피부색이 검다며 멸시를 당했고, 어머니 남자친구로부터 성폭행을 당하는 등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겪었습니다
“나는 내 삶을 숨길 수 없었다.”
1980년대 말, 에민은 자신의 침대를 전시 공간으로 바꿔버렸습니다. 바닥에는 흩어진 속옷, 쓰레기, 빈 술병을 늘어놓았습니다. 이 침대는 곧 ‘자전적 설치미술’의 원형으로 주목받았고, 그녀는 1999년 영국의 대표적 미술상인 터너상(Turner Prize) 최종 후보에 오르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My Bed』 – 일상을 예술로 만든 혁명
현실 그대로의 침대, 이불은 구겨지고, 시트는 얼룩지고, 베개에는 체액 자국과 담뱃재가 선명합니다. 주변에는 사용한 생리대, 알코올병, 콘돔, 슬리퍼, 그리고 속옷까지…그리고 베개 위에는 메모 한장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I was in bed for four days. It started with a little lie and I ended up in bed”라는 자전적 고백 문구와 함께 말이죠.
이 작품은 “예술과 쓰레기의 경계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관객 일부는 “충격적”이라 비난했지만, 테이트는 이 작품을 두고 “관객이 에민의 고통과 불안을 공유하도록 초대하는 용기 있는 설치” 라고 평했습니다. 결국 이 작품은 터너상 결선에 진출하며, “현대미술에서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영향력 있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3고통의 기록, 치유의 여정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은 늘 ‘고백’과 ‘치유’를 테마로 합니다.
내가 같이 잔 모든 사람들(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 1963–1995’(1995)
작가가 직접 봉재 해 텐트에 아플리케(천 위에 덧대거나 꿰매는 방식) 방식으로 부착한 작품은 1963년부터 1995년 까지 함께 잔 102명의 사람의 이름을 보여줍니다.
‘같이 잔’ 사람은 꼭 성관계를 한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같이 잠을 잔 사람도 포함되죠. 그 때문에 이름에는 가족, 친구, 술자리 파트너, 연인, (두 개의 번호로 표기된) 태아도 포함됩니다. 2004년 가디언즈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는 작품에 대해 ‘낙태, 강간, 십대 섹스, 학대, 빈곤’에 대한 작품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이 작품을 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2004년, 작품을 소장하고 있던 런던 모마트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하며 다수의 작품과 함께 소실되었어요.


‘Why I Never Became a Dancer’(1995)
에민은 어린 시절 자란 해변 마을 마게이트를 떠나 영국 댄싱 챔피언십에 참가하려던 십대 시절을 회상합니다. 그녀는 영상에서 시간을 보냈던 장소들을 거론하고, 열한 살, 열세 살 때 여러 남자들과 했던 섹스, 말하자면 지나가는 말처럼 했던 섹스를 언급합니다. 섹스는 그녀를 종종 불쾌하고, 이용당하고, 황량하고, 공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녀는 곧 남자들을 경멸하고 심지어 무시하기 시작했지만, 동시에 섹스가 자신에게 남자들을 지배하는 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몸을 맡기지 않고도 자신의 몸을 통제하기 시작합니다. 섹스 대신 춤을 춘다는 것입니다. 디스코 댄스 대회에 참가한 그녀는 마치 구름 속에 있는 듯합니다. 전국 결승전에 진출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마게이트를 탈출하는 꿈을 꿉니다. 그녀는 자신과 자신의 몸에 만족하지만, 관객들(과거에 그녀와 잠자리를 가졌던 많은 젊은이들이 포함됨)의 광란적인 “창녀! 창녀! 창녀” 합창에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됩니다.
“열다섯 살 때 저는 고향뿐 아니라 그곳의 남자들도 너무 싫어했어요. 저는 창녀가 아니에요. 그저 섹스를 좋아했을 뿐이죠. 그게 전부예요.”
미디어와 대중문화 속 트레이시 에민
- BBC 다큐멘터리 ‘Love, Tracey’(2011): 에민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30년 작업을 조명,
- 마크 제이콥스 컬렉션: 에민의 네온 문구를 패션 로고로 차용,
- U2 앨범 커버: ‘How to Dismantle an Atomic Bomb’ 한정판에 에민의 설치 사진을 사용,
이처럼 그녀의 고백은 미술관을 넘어 일상으로 확장되어, 현대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