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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딘스키와 몬드리안: 추상의 두 얼굴

20세기 초, 예술은 더 이상 눈에 보이는 대상을 단순히 그려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와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은 같은 추상미술을 개척했지만, 서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한 사람은 감정을, 다른 한 사람은 질서를 추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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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딘스키
피트 몬드리안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몬드리안

색과 선으로 감정을 연주하다-칸딘스키

칸딘스키는 원래 법학을 공부했지만, 음악과 미술에 매료되어 화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색과 선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영혼을 울리는 힘을 지닌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대표작 〈Composition VII〉(1913)를 보면, 화면 전체에 곡선과 대각선이 격렬하게 얽혀 있고, 빨강·파랑·노랑 같은 색채가 부딪히며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 칸딘스키는 음악을 회화의 모델로 삼았습니다. 그는 그림이 소리 없는 음악처럼 감정을 직접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가 말한 ‘내적 필연성(Inner Necessity)’이란, 화가의 내면에서 반드시 표현되어야 하는 충동을 뜻합니다. 칸딘스키의 추상은 이 충동의 시각적 기록입니다.

파일:Vassily Kandinsky, 1913 - Composition 7.jpg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칸딘스키 〈Composition VII〉(1913)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다-몬드리안

몬드리안 역시 처음에는 풍경화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점차 나무나 건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않고, 형태를 단순화하며 본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영향을 준 것이 큐비즘입니다. 큐비즘은 피카소와 브라크가 시작한 운동으로,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본 조각난 모습처럼 분석해 표현했습니다. 몬드리안은 이 방식을 받아들이되, 더욱 단순한 형태로 밀고 나갔습니다.

1917년 그는 네덜란드의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데 스틸(De Stijl)’이라는 그룹을 결성했습니다. ‘데 스틸’은 네덜란드어로 ‘양식(Style)’을 뜻하는데, 예술과 디자인, 건축을 통합해 보편적인 질서를 추구하자는 모임이었습니다. 이 안에서 몬드리안은 ‘네오플라스티시즘(Neoplasticism)’이라는 사상을 내세웠습니다. 이는 “새로운 형태주의”라는 뜻으로, 그림에서 곡선과 사선, 복잡한 색을 모두 배제하고 수직과 수평의 선, 그리고 빨강·노랑·파랑 같은 기본색만 사용하자는 원칙입니다.

그의 대표작 〈Broadway Boogie Woogie〉(1942–43)를 보면, 뉴욕의 바둑판 같은 도로망과 재즈 음악의 리듬을 단순한 색의 네모와 선으로 표현했습니다.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도시의 에너지와 질서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Broadway Boogie Woogie - Wikipedia
몬드리안 〈Broadway Boogie Woogie〉(1942–43)

감정과 질서의 두 언어

  • 칸딘스키는 색과 선을 감정의 기호로 사용했습니다. 작품을 감상할 때는 형태가 무엇을 닮았는지 찾기보다는, 전체적인 흐름과 리듬을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 몬드리안은 질서의 언어를 추구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장식이 아니라, 혼돈 속에서도 존재하는 우주의 균형을 탐구한 시각적 실험입니다.

추상회화의 선구자

칸딘스키는 영혼을 표현한 화가, 몬드리안은 질서를 탐구한 철학자였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추상을 말했지만, 그 의미는 정반대였습니다. 칸딘스키의 회화적 리듬은 20세기 중반의 추상표현주의로 이어졌고,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언어는 미니멀리즘, 현대 건축, 가구와 패션 디자인에까지 깊이 스며들었죠. 예를 들어, 몬드리안의 빨강·파랑·노랑 격자는 지금도 전 세계 브랜드 디자인에 응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차이 덕분에 추상미술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20세기 예술 전체를 바꾸는 거대한 힘이 될 수 있었습니다.

몬드리안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 (1930)

결론

칸딘스키는 영혼을 표현한 화가, 몬드리안은 질서를 탐구한 철학자였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추상을 말했지만, 그 의미는 정반대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차이 덕분에 추상미술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20세기 예술 전체를 바꾸는 거대한 힘이 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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