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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너상 2025 ① – 전복과 논쟁의 40년사

혁명은 이름 없는 화가에서 시작되었다

영국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상이자, 매년 논쟁의 중심에 서는 터너상(Turner Prize). 이 상의 이름은 18세기 말 낭만주의 화풍의 거장 조셉 말로드 윌리엄 터너(J. M. W. Turner)에게서 유래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터너상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한 ‘풍경화의 미학’과는 거리가 멉니다. 1984년 처음 시작된 터너상은 현대미술의 경계를 재정의하고, 예술의 정치성과 사회적 파장을 가늠하는 척도로 기능해왔습니다. 이 상은 한 해 동안 가장 주목할 만한 전시나 미술활동을 보여준 50세 미만의 영국 미술가 (영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출신 미술가와 외국에서 활동하는 영국 국적의 미술가를 총괄하는 의미)에게 수여되는 대표적인 현대미술상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터너상은 그 자체로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부학적 실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대상이 전통적 회화든, 설치든, 퍼포먼스든, 심지어 보이지 않는 개념 자체이든, 이 상은 ‘예술’이라는 단어가 언제 어떻게 불편해질 수 있는지를 반복적으로 증명해온 역사입니다.

The Fighting Temeraire - Wikipedia
윌리엄 터너(J. M. W. Turner)의 대표작 전함 [테메레르의 마지막 항해 (fighting temeraire)]

논쟁을 먹고 자란 상

터너상은 항상 찬사와 비판의 경계 위에 있었습니다. 1993년, 레이첼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가 빈 방의 부피를 시멘트로 떠낸 「House」로 수상하자, 언론은 “이게 예술인가?”라며 앞다퉈 비난했습니다. 2001년 마틴 크리드(Martin Creed)가 단지 불을 껐다 켰다는 이유로 「The lights going on and off」로 수상했을 때는 국회의원이 테이트에 항의 서한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상은 “불편할지언정 무력하지 않은 예술”을 지지하는 태도를 고수해왔습니다.

마틴 크리드(Martin Creed) 「The lights going on and off」

이러한 태도는 단순한 도발을 넘어서, 사회적 발화의 장으로서 예술의 역할을 재정의했습니다. 2004년 제레미 델러(Jeremy Deller)가 광산노동자의 파업을 주제로 다큐멘터리 퍼포먼스 「Memory Bucket」를 통해 수상한 사례는, 터너상이 정치사회적 발언을 담을 수 있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변화하는 경계, 확장되는 정의

터너상은 2017년부터 연령 제한(기존 50세 이하)을 폐지하며, 보다 넓은 세대와 실천 방식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했습니다. 또한 2019년에는 이례적으로 후보 4인이 연합하여 “개별 수상”을 거부하고, ‘집단적 실천’으로 상을 공동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예술계에 “경쟁을 통한 위계적 수상 방식은 과연 적절한가”라는 구조적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편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중단되었던 터너상도, 이후 디지털과 비물질적 예술형식을 포함하며 “전시장 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적 태도를 강화해갔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테이트가 예술가와 큐레이터의 협업 구조, 지역 예술기관과의 네트워크, 사회적 연대를 수상 기준의 중심으로 삼는 흐름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Turner Prize split four ways as nominees decide against a single winner
2019년 작품의 우열 가리기를 거부한 4인의 후보. 왼쪽부터 차레로 헬렌 캐모크,  로렌드 아부, 타이 샤니, 오스카 무리요

기억해야 할 역대 수상자들

터너상은 단순히 이름난 예술가를 발굴해온 것이 아니라, 예술사적 전환점이 될 만한 실천을 기록해왔습니다

  •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 죽은 상어를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담근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로 1995년 수상.
  • 길버트 앤 조지(Gilbert & George) – 1986년 수상. 퍼포먼스와 사진 작업을 통해 남성 동성애와 영국 보수주의를 교차.
  •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 인간 신체를 본뜬 조각으로 공간과 존재의 문제를 제기한 1994년 수상자.
  • 루반드라디 투케르(Lubaina Himid) – 2017년 수상. 흑인 여성으로는 최초로 수상하며, 흑인 디아스포라 정체성과 식민주의 비판을 전면에 배치.

이러한 수상자들은 단순한 창의력보다는, 사회적 맥락과 미술사의 방향을 뒤흔드는 기획으로 기억됩니다.

Damien Hirst Shark Controversy | Zarastro Art

2025년, 터너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2025 터너상 후보 작가들의 작품은 오는 9월 27일부터 내년 2월 22일까지 브래드퍼드 카트라이트 홀 미술관(Cartwright Hall Art Gallery)에서 소개될 예정이며, 최종 수상자는 12월 9일 영국 웨스트 요크셔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발표된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2만5000파운드(약 4700만원)가 수여될 예정입니다.

이는 처음으로 ‘비수도권 중심 도시’에서 전시와 시상을 진행하는 의미 있는 전환입니다. 이는 단지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중심과 주변, 기성 미술관과 지역 커뮤니티 사이의 관계를 재조정하려는 시도입니다. 이 상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터너상은 매번 그 경계를 새로 그리고 있으며, 그 경계는 예술이 사회와 만나는 ‘장소’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Turner Prize 2025: A Bold and Diverse Shortlist for Bradford's Year in the  Spotlight - ART AFRICA Magazine
브래드퍼드 카트라이트 홀 미술관(Cartwright Hall Art Gallery)

터너상이란 질문 그 자체

터너상은 하나의 ‘답’이 아니라 늘 질문을 던지는 형식으로 존재해왔습니다. 이 상이 불편한 이유는, 단지 파격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예술’이라는 개념을 해체하고 재구성하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는 정치가 있고, 사회가 있고, 기억이 있으며, 무엇보다 미래의 가능성이 담겨 있습니다.

터너상이 매년 재정의하는 것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예술이 지금 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대한 민감한 리트머스지입니다. 그러므로 터너상은 단순히 가장 혁신적인 예술가에게 주어지는 상이 아니라, 예술이 여전히 유효한 사회적 언어인가를 묻는 테스트 그 자체입니다.

앞으로 터너상 2025 시리즈에서는 선정된 후보 4인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가겠습니다.

최종 후보 작가  네나 칼루 , 르네 마티치, 모하메드 사미,  제이디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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