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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너상 2025 ④ – 제이디 차(Zadie Xa), 파도가 들려준 조상의 목소리

파도가 들려주는 환상 여정

밴쿠버 어느 바닷가의 차가운 바람 속에서 피어난 목소리 하나. “조상의 고래는 우리를 기억한다(Your Ancestors Are Whales)”. 한 문장에 담긴 울림이, 제이디 차(Zadie Xa, 1983~)를 바다처럼 깊고 광활한 예술의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한국 이름은 ‘차유미’. 그녀는 한국계 캐나다인으로, 밴쿠버의 바다와 한국 샤머니즘, 북미 원주민의 전통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환상, 기억의 조각들을 짜 맞췄습니다 . 작가는 한국의 전통을 활용하여, 서구와 점령국에 의해 지워지거나 억압된 이야기들을 조명합니다. 

제이디 차 | Thaddaeus Ropac

전부는 아닐지 몰라도 – 다매체의 도약

학사(2007)와 석사(2014) 과정을 지나 런던과 마드리드를 오가며 제이디 차는 붓, 천, 소리, 몸짓을 결합하는 ‘멀티미디어 예술 작가’로 탄생했습니다. 그녀가 직접 만든 패치워크 천에 칼을 바느질하고, 샤머니즘 의상을 입은 퍼포먼스를 벌이며 “회화는 배경일 뿐”이라 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작가는 댄서와 뮤지션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협업 작업을 진행하며, 스페인 작가 베니토 시장 바예호(Benito Mayor Vallejo), 무용수 지아유 코르티(Jia-Yu Corti)와 함께 < Dream Dangerous >(2020)라는 작품을 2020년 프리즈 런던(Frieze London)에서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해당 퍼포먼스는 시간 여행, 조상의 고향, 모계 사회의 원형, 해양 생태에 대한 작가들의 관심을 더욱 깊이 있게 탐구하는 45분 분량의 실험적인 공연이었습니다.

공감각으로 이끌어내는 샤머니즘 의식

2025년 샤르자 비엔날레 16에서 제이디 차는 Benito Mayor Vallejo와 함께 설치작 〈심해의 메아리를 가로지르는 달빛 고백: 당신의 조상은 고래, 지구는 모든 것을 기억한다(Moonlit Confessions Across Deep Sea Echoes…)〉를 선보였습니다. 이 작품은 650개 이상의 황동종이 달린 거대한 조형물, 보자기 패치워크, 초현실적 회화, 그리고 파도 소리를 담은 사운드 스케이프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

관객이 종 사이를 지날 때마다 일으키는 울림은, 마치 “조상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의식과 같습니다. 제이디는 “내 안의 바다, 내 안의 대지, 그 안에 잠든 영혼”을 작품으로 끌어내어, 현대 예술이 오랫동안 잊은 감각적 공명을 되살립니다.

그녀의 작품에서 한국 샤머니즘 요소는 특히 강렬합니다. 마고 할미, 바리공주, 구미호 등 한국의 설화나 조각보와 같은 전통 문화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만들죠. 터너상 심사 위원단 역시 황동 방울이나 보자기를 활용한 제이디 차의 조각, 설치 작품들을 높이 평가했어요. 결국 2025년 4월 23일, 제이디 차는 터너상(Turner Prize) 최종 후보 4인의 반열에 올라 “바다와 민속, 디아스포라를 향한 정교한 메시지”로 호평받았습니다 .

*디아스포라 : 원래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도 유대교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는 것을 일컫던 말로,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의미

심해의 메아리를 가로지르는 달빛 고백: 당신의 조상은 고래, 지구는 모든 것을 기억한다(Moonlit Confessions Across Deep Sea Echoes…)〉
Zadie Xa with Benito Mayor Vallejo. Sharjah Biennial 2025
심해의 메아리를 가로지르는 달빛 고백: 당신의 조상은 고래, 지구는 모든 것을 기억한다(Moonlit Confessions Across Deep Sea Echoes…)〉

제이디 차의 미학과 메시지

제이디 차의 예술은 하나의 분명한 선언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나는 화가가 아니다. 나는 이야기꾼이다.”

그녀에게 있어 캔버스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화면 위의 색은 이야기의 문을 여는 자물쇠에 불과합니다. 그녀는 붓을 잡는 대신, 천을 꿰매고, 종을 울리고, 의상을 걸쳐 입은 채 무대 위에 선다. 회화는 조용히 뒤에서 배경을 만들어줄 뿐, 무대 위에서 이야기를 펼치는 것은 언제나 그녀 자신입니다.

그녀의 작업은 단지 시각적인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샤먼의 주문, 할미의 고함, 죽은 조상이 들려주는 고래의 노래를 듣게 됩니다.

Zadie Xa
<언어적 유산과 달 탐사 (Linguistic Legacies and Lunar Explorations), 2016>,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이렇듯 제이디 차의 예술은 정체성, 생태, 신화,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를 끈적이고 무거운 안개처럼 녹여내고, 관객의 몸과 감각에 천천히 스며들도록 합니다. 그녀는 한국 샤머니즘에서 가져온 상징들—종, 방울, 북, 의례복, 가면—을 마치 서사의 연장선처럼 끌어들여, 몸과 공간, 소리와 이미지가 하나가 되는 전례 없는 감각적 몰입을 구현합니다.

그녀의 가장 큰 특징은, 전통과 현대, 서사와 미학, 조상과 미래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경계라는 개념 자체를 해체’한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무당이 들고 다니는 종과 서양의 현대 조각이 한 공간에서 충돌하고, 아시아계 이민자의 상처와 북미 원주민의 민속 의례가 같은 사운드 속에서 겹쳐집니다. 이 혼합은 그저 다양성의 찬양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날 세계화 속에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하나의 신화적이고 정치적인 사운드 퍼포먼스입니다.

결국, 제이디 차는 예술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디아스포라적 존재는 바다에 닻을 내리지 못한 뗏목이다. 그러나 우리는 울림을 통해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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