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에서 예술의 섬으로: 나오시마의 변신
한때 산업 폐기물로 가득했던 작은 섬, 나오시마(直島)는 이제 세계적인 예술 애호가들이 반드시 찾아야 할 ‘예술의 성지’로 변모하였습니다. 단지 아름다운 전시물 몇 점이 이곳을 특별하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나오시마는 예술, 건축, 자연, 그리고 인간의 교감이 만들어낸 기적의 현장입니다. 이 놀라운 변신의 배경에는 오랜 시간에 걸친 철학적 투자와 깊은 신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산업의 그늘 속에서 시작된 이야기
나오시마는 일본 세토 내해에 위치한 조용한 섬으로, 본래는 어업과 농업을 기반으로 한 평범한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미쓰비시 머티리얼이 구리 제련소를 설립하면서 나오시마는 급속히 산업화되었고, 동시에 심각한 환경 오염에 직면하게 됩니다. 바다와 땅은 폐기물로 오염되었고, 주민들은 하나둘씩 섬을 떠났습니다. 점차 쇠락하던 이 섬에 전환점을 마련한 것은 바로 베네세 그룹(Benesse Holdings)의 등장이었습니다.

후쿠다케 소이치로의 통찰: 예술로 섬을 살리다
나오시마 재생의 핵심 인물은 베네세 그룹의 명예 회장 후쿠다케 소이치로(福武總一郎)입니다. 그는 단순한 지역 재개발이 아닌, 예술과 철학을 통해 인간과 자연, 문명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의 신념은 “삶의 질 향상(Living Well)”이라는 베네세 철학과 맞닿아 있으며, 섬이라는 한정된 자연 공간이야말로 현대 사회가 놓치고 있는 본질을 되찾을 수 있는 장소라고 보았습니다.
후쿠다케는 1988년, 자사의 사회공헌 사업으로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단발성이 아닌, 30년에 걸친 장기 비전으로 기획되었으며, 문화·예술·교육이 융합된 지속 가능한 지역 모델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안도 다다오와의 운명적인 만남
후쿠다케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에게 프로젝트의 건축적 방향을 의뢰합니다. 안도는 ‘빛과 콘크리트의 시인’이라 불리는 건축가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깊이 있게 고민하는 작품 세계를 지닌 인물입니다.
그의 건축 철학은 후쿠다케의 이상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고, 이 둘의 협업은 나오시마를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게 됩니다.
● 지추 미술관(地中美術館)
땅속에 묻힌 듯한 이 미술관은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예술을 품을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월터 드 마리아, 제임스 터렐, 모네 등의 작품이 전시되며, 특히 자연광을 활용한 관람 경험은 예술과 자연의 경계를 허물고 있습니다.

● 베네세 하우스(Benesse House)
숙박과 미술관이 결합된 복합 공간으로, 관람객은 예술 속에서 잠들고 아침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야외 조각과 회화, 사진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미술관과 호텔이 하나의 생태계처럼 작동합니다.

● 이우환 미술관
한국의 대표적인 미니멀리즘 작가 이우환과 안도 다다오가 협업하여 완성한 이 공간은, 시간과 공간, 존재의 본질을 고찰하는 이우환의 철학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섬 주민들과 함께 만든 기적
나오시마의 변신은 단지 예술가들과 기업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가장 큰 원동력은 주민들의 참여와 협력이었습니다. 버려진 민가들을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아트 하우스 프로젝트’는 주민들의 동의를 받아 추진되었으며, 일부 주민은 자신의 집을 전시장으로 개방하기도 했습니다.
화장실을 예술 작품으로 꾸미거나, 골목길 전체를 설치미술로 구성하는 등의 다양한 시도가 진행되었고, 주민들은 이를 지지하고 협조하였습니다.

세계가 주목하는 예술 섬으로
이제 나오시마는 연간 7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예술의 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단지 관광 명소를 넘어서, 예술과 건축, 자연이 공존하는 살아 있는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유럽과 아시아, 미주권의 예술가들이 이곳을 창작과 사색의 장소로 선택하고 있습니다.

2024년, 또 하나의 걸작: ‘나오시마 신미술관(가칭)’
2024년에는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열 번째 나오시마 건축물이자, 새로운 상징이 될 ‘나오시마 신미술관(가칭)’이 완공될 예정입니다. 혼무라 지구의 언덕 위에 지어지는 이 미술관은 “자연과 인간, 예술이 교감하는 공간”이라는 콘셉트 아래 설계되었으며, 빛과 공간의 관계를 극대화한 안도의 건축 언어가 더욱 진화된 형태로 반영될 것입니다.
신규 미술관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래 글에서 확인하세요!
나오시마가 주는 영감
나오시마는 단순한 재개발 성공 사례를 넘어, 예술이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키고,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며, 공동체의 미래를 다시 설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후쿠다케 소이치로, 안도 다다오, 이우환, 그리고 이름 없는 많은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낸 이 ‘예술의 섬’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공간에서 예술을 꿈꾸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