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문자를 위한 예술가이드

현대미술의 모호성, 그 불투명한 미학

화이트 큐브의 고요한 침묵 속에 놓인 현대미술 작품 앞에서, 관람객은 종종 지독한 소외감을 마주하곤 합니다. 명제표를 탐독하고 큐레이터의 해설에 귀를 기울여보지만, 암호화된 작가의 언어는 쉽사리 해독되지 않습니다. 감상의 즐거움보다는 ‘알 수 없음’에서 오는 당혹감이 앞서는 것,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을 대면할 때 겪는 가장 보편적인 풍경일지도 모릅니다.

What Is Contemporary Art? | Walker Art Center
리즈 데셰네스 전시 전경

이해의 강박을 넘어선 감상의 지평

우리는 흔히 예술을 ‘이해’해야 할 대상으로 상정합니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그 태생부터 명징한 논리보다는 모호한 감각의 영역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현대미술이 낯설게 느껴질 때, 우리는 먼저 이 예술의 속성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21세기 미술을 관통하는 두 가지 키워드는 바로 ‘다양성’과 ‘모호성’입니다.

이브 미쇼(Yves Michaud)는 1978년 이후의 미술을 ‘동시대 미술’로 규정하며, 이를 ‘기체 상태의 예술’이라 명명했습니다. 고체처럼 단단한 형태를 지녔던 고전 미술과 달리, 현대미술은 안개처럼 흩어지며 분위기로만 존재하는 속성을 지닙니다. 마치 새벽 호숫가의 물안개나 산등성이의 운해를 바라볼 때처럼, 우리는 형태를 분석하기에 앞서 그 불투명한 분위기 자체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불분명함’은 장벽이 아니라, 오히려 관람객의 내밀한 감성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동력이 됩니다.

See contemporary art at Göteborgs Konsthall
2018년에 열린 모로코 작가 무니르 파트미의 개인전 ‘내 뒤 180도’ 

일상의 변용: 단토와 뒤샹이 던진 화두

1964년, 미학자 아서 단토(Arthur Danto)는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마주하며 예술의 경계가 무너지는 충격을 경험합니다. 슈퍼마켓의 비누 상자가 갤러리라는 성소(聖所)에 놓였을 때, 그는 비로소 ‘평범한 것의 변용’을 통해 예술의 종말과 동시에 새로운 지평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전복적인 사고의 기저에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레디메이드’가 존재합니다. 뒤샹은 흔한 기성품에 새로운 제목과 관점을 부여함으로써 사물이 지닌 본래의 실용적 기능을 거세하고 ‘개념’을 창조했습니다. 작가가 직접 손으로 빚어내지 않아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이 혁명적인 선언은 미니멀리즘과 플럭서스, 그리고 오늘날의 제프 쿤스와 데미언 허스트에게로 이어지며 현대미술의 거대한 흐름을 형성했습니다.

모호함이 지닌 사유의 힘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긴장은 감상의 끝이 아닌 시작입니다. 건축가 김찬중은 “모호성이야말로 사람들을 잠시라도 사고할 수 있게 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언급했습니다. 명확하게 규정된 작품은 단 한 번의 시선으로 휘발되지만, 모호한 작품은 관람객 각자의 주관적 해석을 투영할 여백을 남깁니다. 결국 “작품은 관람객의 반응을 통해 완성된다”는 명제는 동시대 미술을 지탱하는 가장 유효한 진리입니다.

마크 로스코 (Mark Rothko) 작품

동시대 미술과 조우하는 태도

현대미술의 난해함을 단번에 해결할 만능열쇠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시대의 간격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변화의 흐름에 열린 마음으로 다가설 때 그 낯설음은 비로소 사유의 즐거움으로 변모합니다.

미술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대중 매체의 문화 비평을 탐독하거나 전문 잡지를 통해 동시대의 담론을 추적하는 것, 혹은 국·공립 기관의 아카데미를 통해 미학적 토대를 쌓는 일은 감상의 밀도를 높여줍니다. 무엇보다 작가의 도록과 이론서를 곁에 두는 습관은 모호한 감각의 영역을 명료한 비평의 언어로 치환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현대미술은 이해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동시대의 공기(Air)와 같습니다. 그 불투명한 미학의 깊이 속에 몸을 맡길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술이 선사하는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게 될 것입니다.

Convergence, 1952 by Jackson Pollock
Convergence, 1952 by Jackson Poll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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