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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의 가치를 바꾼 YBA ① - 데미안 허스트부터 찰스 사치까지

폐창고에서 시작된 예술 혁명

1980년대 후반의 런던은 안개만큼이나 정체되어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회화와 보수적인 갤러리 시스템이 지배하던 시절, 골드스미스 대학(Goldsmiths College)의 학생들은 지루함에 몸부림쳤습니다. 그 중심에 있던 인물이 바로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입니다. 그는 시스템 안에 편입되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시스템을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Who were the Young British Artists? | London Museum
골드스미스 대학(Goldsmiths College)

1988년 7월: 런던 도클랜드의 전설적인 ‘Freeze’

허스트는 동료 학생 15명을 모아 런던의 버려진 항구 창고를 빌렸습니다. 당시 런던의 이스트엔드는 지금의 힙한 느낌이 아닌, 가난과 범죄가 들끓던 황량한 구역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직접 창고의 쓰레기를 치우고 하얀 페인트를 칠했습니다.

<Freeze> 전시는 단순한 학생 과제가 아니었습니다. 허스트는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큐레이터와 컬렉터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고 고급 카탈로그를 제작해 배포하는 등 ‘전문적인 마케팅’을 도입했습니다. 예술가들이 직접 기획하고, 홍보하고, 판매까지 하는 ‘DIY(Do It Yourself) 아트’의 시대가 열린 순간이었습니다.

Freeze Frame: the YBAs Look Back to the Show that Made Them | Contemporary  Art | Sotheby's
프리즈 전시 오프닝파티, 왼쪽부터 이언 데이븐포트, 데미안 허스트, 앤젤라 불록, 피오나 래, 스티븐 파크, 안야 갈라치오, 사라 루카스, 게리 흄

마이더스의 손, 찰스 사치(Charles Saatchi)의 등장

이 반란을 가장 예민하게 포착한 인물이 바로 찰스 사치였습니다. 그는 전설적인 광고 대행사 ‘사치 앤 사치’의 설립자로, 대중의 욕망을 요리하는 데 천재적인 감각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80년대 미국 미니멀리즘 예술에 심취해 있었으나, 허스트의 창고 전시에서 ‘날 것 그대로의 에너지’를 발견하고 자신의 수집 방향을 180도 전환합니다.

  • 광고 기법의 예술 이식: 사치는 예술을 고귀한 정신적 산물이 아닌, 강력한 ‘브랜드’로 보았습니다. 그는 작품이 단 3초 안에 관람객을 압도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 전폭적인 지원과 독점: 사치는 유망한 YBA 작가들의 작품을 통째로 사들였습니다. 그는 단순히 구매자가 아니라, 작가들에게 제작비를 대주고 대작을 주문하는 ‘프로듀서’에 가까웠습니다. 데미안 허스트의 상어 작품 역시 사치의 5만 파운드(당시로서는 거액) 지원이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 시장의 창조: 사치는 자신의 개인 미술관인 ‘사치 갤러리’를 통해 이들의 작품을 전시하며 언론을 자극했습니다.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쏟아질수록 작품의 가치는 치솟았고, 사치는 그 정점에서 시장을 지배했습니다.

사치와 YBA의 결합은 예술과 자본, 그리고 마케팅이 하나로 섞인 현대 미술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배고픈 예술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록스타처럼 행동했고, 럭셔리 브랜드처럼 소비되었습니다.

컬렉터들은 무엇으로 컬렉팅 하는가 :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현대미술 씬, 그 뉴스 속 우리가 주목할 포인트들
찰스 사치(Charles Saat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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