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고 보스 프라이즈(Hugo Boss Prize)의 연대기
럭셔리 패션과 순수 예술의 경계가 모호해진 오늘날, 그 협업의 가장 성공적인 선례이자 권위 있는 이정표로 남은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휴고 보스 프라이즈(Hugo Boss Prize)’입니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큐레이팅과 독일 패션 명가 휴고 보스의 후원이 만나 탄생한 이 상은 25년 넘게 현대 미술계의 ‘노벨상’ 혹은 ‘오스카’로 불리며 가장 혁신적인 예술가들을 발굴해 왔습니다.

시대의 감각을 읽다
휴고 보스 프라이즈는 1996년,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과 휴고 보스 그룹의 파트너십을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휴고 보스는 단순한 의류 브랜드를 넘어 문화 전반에 영감을 주는 브랜드로 거듭나고자 했습니다.
이 상이 특별했던 이유는 ‘무경계성’에 있습니다. 국적, 연령, 매체의 제한 없이 오직 예술적 성취와 혁신성만으로 수상자를 선정했습니다. 수상자에게는 10만 달러(약 1억 3천만 원)의 상금과 함께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의 단독 전시라는, 예술가에게는 꿈과 같은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역사를 바꾼 거장들
휴고 보스 프라이즈를 거쳐 간 이들은 현재 세계 미술 시장과 비엔날레를 장악하고 있는 거장들입니다.
① 매튜 바니 (Matthew Barney) – 1996년 초대 수상자
최초의 수상자인 매튜 바니는 조각, 퍼포먼스, 영상을 결합한 대작 크리매스터 사이클(Cremaster Cycle)로 유명합니다. 저항, 모호성, 성적 발달 및 분화라는 주제를 탐구하기 위해 작가 자신이 창조한 복잡하고 환상적인 상징 체계를 담은 5부작 영화 시리즈중 크래그마스터 1을 선보였고, 휴고 보스 프라이즈를 수상한 첫번째 작가가 되었죠. 그는 신체적 한계와 신화적 서사를 결합하여 현대 미술의 시각적 언어를 확장시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② 한스 피터 펠드만 (Hans-Peter Feldmann) – 2010년 수상자
이미지를 활용하여 아카이브와 유형론을 구축하는 작업을 자주 하는 독일 작가 한스-페터 펠트만은 70세의 나이로 휴고 보스 상을 수상했습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전시와 연계된 공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스-울리히 오브리스트와 펠트만의 대담을 주최했는데, 두 사람은 그해 공동으로 저서 『인터뷰 』를 출간했습니다 . 질의응답 형식의 이 책에는 오브리스트의 질문에 펠트만은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발전 과정을 설명합니다.
한스-페터 펠트만은 수상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박물관 갤러리 중 한 곳에서 전시회를 열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받은 상을 전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제 세대에게 10만 달러는 엄청난 돈이고, 예술가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액수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예술을 접했던 60년대와 70년대에는 돈과 예술을 연결하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예술가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었고, 작품 활동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10만 달러를 받는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돈을 모두 벽에 붙여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펠트만은 자신의 전시회를 위해 박물관 갤러리 벽에 1달러 지폐 10만 장을 붙였습니다.

③ 아니카 이 (Anicka Yi) – 2016년 수상자
한국계 미국인 예술가 아니카 이는 ‘냄새’와 ‘박테리아’라는 비가시적인 재료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녀의 휴고 보스 상 전시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입구, 즉 “대기 공간”으로, 이곳에는 작가가 고안한 향기가 나는 용기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서로 마주 보는 두 개의 디오라마로, 각각 독립적인 생태계를 보여줍니다. 한 디오라마는 한천이라는 젤라틴성 물질이 담긴 타일로 덮여 있었는데, 작가는 이 위에 맨해튼 차이나타운과 코리아타운 지역에서 채취한 박테리아 균주를 배양했습니다. 전시장 안쪽에는 두 번째 디오라마가 있었는데, 거울 표면에 비친 통로들을 따라 이동하는 개미 군락이 마치 거대한 데이터 처리 장치를 연상시켰습니다.
과학과 인문학을 결합한 그녀의 설치 작업은 생물학적 위기와 기술의 진보를 감각적으로 탐구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2025년의 새로운 장: ‘보스 어워드(BOSS Award)’의 탄생
2020년 데아나 로슨(Deana Lawson)을 마지막으로 구겐하임과의 휴고 보스 프라이즈는 26년의 여정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2025년, 휴고 보스는 아트 바젤(Art Basel)과 손잡고 더욱 확장된 형태인 ‘아트 바젤 어워즈(Art Basel Awards)’로 귀환했습니다.
2025년 영광의 주인공: 메리엠 베나니 (Meriem Bennani)
2025년 12월, 마이애미 비치에서 열린 아트 바젤 어워즈 나이트에서 메리엠 베나니가 첫 번째 ‘보스 어워드(BOSS Award)’ 수상자로 발표되었습니다.
모로코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베나니는 영상, 애니메이션, 조각을 넘나드는 천재적인 아티스트입니다. 그녀는 소셜 미디어의 미학, 디지털 문화, 포스트 콜로니얼(탈식민주의) 비판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버무려냅니다. 특히 그녀의 대형 영상 설치 작업은 관람객을 초현실적인 디지털 세계로 초대하며, 집단적 경험의 아름다움을 찬양합니다.
이번 수상은 휴고 보스가 구겐하임이라는 특정 기관을 넘어, 아트 바젤이라는 세계 최대의 아트 플랫폼과 결합하여 현대 미술의 외연을 패션, 디자인, 음악 등 다학제적 영역으로 넓혔음을 의미합니다.

럭셔리와 예술의 영원한 동행
휴고 보스는 단순히 예술을 후원하는 것을 넘어, 예술가들의 혁신적인 시각을 브랜드의 DNA에 이식해 왔습니다. 1996년의 매튜 바니부터 2025년의 메리엠 베나니까지, 휴고 보스가 선택한 이름들은 곧 현대 미술의 가장 뜨거운 역사 그 자체였습니다. 앞으로도 이들이 그려낼 예술적 지도는 우리에게 새로운 영감과 우아한 충격을 선사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