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초상화의 거장, 알렉스 카츠(Alex Katz)
알렉스 카츠(Alex Katz))는 관념이나 이야기의 장식을 걷어내고, 오직 ‘지금 이 순간의 얼굴’을 평면 위에 고정시킨 화가입니다. 단순한 윤곽, 대담한 색면, 그리고 절제된 시선. 그가 그린 초상은 광고 이미지와 영화 스틸, 무대의 장면처럼 강렬하지만, 그 속에는 미묘한 고요와 정지된 시간의 감각이 흐릅니다. 카츠는 그렇게 20세기 후반 미국 회화의 한 축을 재정의했습니다.

퀸스의 예술 소년, 뉴욕 화단으로
1927년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알렉스 카츠는, 1년 뒤 가족과 함께 퀸스의 세인트앨번스로 이주했습니다. 부모는 러시아계 이민자였고, 어머니는 예디시 극장에서 배우로 활동했습니다. 집 안에는 언제나 문학과 연극, 예술의 대화가 떠돌았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그는 일찍부터 예술에 눈을 떴고, 학교의 미술 프로그램을 통해 기초를 닦았습니다. 이후 뉴욕의 최상위 미술 대학 쿠퍼 유니온(Cooper Union)에서 본격적인 미술 교육을 받으며, 뉴욕 화단의 흐름과 정면으로 마주했습니다.

추상주의 속 구상주의
1950년대 전후 뉴욕은 작슨 폴록, 윌리엄 드 쿠닝을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의 열기로 들끓고 있었습니다. 심오한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이 두각을 드러낼 때, 당시 시대의 조류 속에서 자연, 오브제를 그리는 알렉스 카츠의 구상 회화는 너무나 동떨어져 보였습니다. 실제로 당시 수많은 비평가들이 그의 작품을 두고 ‘깊이’가 없다고 평했죠. 그러나 카츠는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해 나갔습니다.
1949년, 그는 메인주의 스코히건 스쿨(Skowhegan School)에서 야외에서 직접 그리는 ‘플렌에어(plein air)’ 수업을 경험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대상을 직접 마주한다”는 감각을 배웠습니다. 풍경과 사람을 함께 그리며, 평면 위에서 살아 있는 존재를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했죠.

단순함의 미학, 색면의 리
카츠의 회화는 무엇보다 ‘단순화된 윤곽, 대형화된 색면, 배경의 무조(無調)’로 정의됩니다.
그는 TV나 영화 같은 영상 매체들이 대상의 멋진 부분을 포커스하고 불필요한 부분은 잘라내는 방식에서 힌트를 얻어 일상의 아름다운 순간에서 핵심적인 요소를 부각하고 나머지는 대담한 생략으로 처리하죠. 그의 인물은 불필요한 붓질을 거부하고, 최소한의 형태로 요약됩니다. 배경은 한 가지 색으로 처리되어, 인물이 화면 속에서 거의 부유하듯 떠오릅니다. 이 단순함 속에서 오히려 시선은 강렬해집니다. 그 결과 그의 인물들은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얼굴로 남습니다.

영감의 원천, 사랑하는 뮤즈
그의 아내 아다(Ada Katz)는 카츠 예술의 중심에 있는 인물입니다. 1958년 결혼 이후 수백 점의 작품에 등장하며, ‘카츠의 여인’이라 불릴 만큼 하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대표작 Black Dress(1960), Ada with Sunglasses 시리즈는 모두 그녀의 초상에서 비롯된 이미지의 변주입니다. 이 연작들은 ‘동시대의 얼굴’을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했습니다.

무대와 도시로 나아간 회화
카츠는 회화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지를 사회 속으로 확장하는 전략가였습니다. 1960년대 이후 안무가 폴 테일러(Paul Taylor)와 협업해 무대 디자인을 맡았고, 회화적 감각을 무용의 시각 언어로 번역했습니다. 이후 카츠는 1960년대부터 안무가 폴 테일러(Paul Tayiot)와 20여 년간 12개가 넘는 발레 공연을 기획했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영감을 받아 댄서 시리즈 그림을 그리도 했죠.

계속되는 현재 — 90세의 거장이 그리는 ‘지금’
카츠의 작품은 휘트니 미술관, 테이트, 오랑주리, 메트로폴리탄 등 세계 유수 미술관에서 반복적으로 전시되었습니다. 특히 2022년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은 그의 70년 예술 여정을 조망한 상징적 전시로 평가받았습니다. 90대가 된 지금도 그는 여전히 작업 중이며, 2024년 모마(MoMA)에서 공개된 Seasons 시리즈를 통해 현재진행형의 감각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금’을 기록하는 회화
알렉스 카츠의 회화는 기술의 과시나 장식적 서사 대신, 단 하나의 명제를 향합니다.
“내 작품은 지금 여기, 현재에 관한 것이다. 영원 역시도 현재라는 선상에 존재한다.”
그의 인물들은 스냅사진처럼 현대인의 외양을 담아내지만, 동시에 회화만의 여백과 침묵을 품습니다. 카츠의 평면은 결코 얕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찰나의 생생함과 정지된 시간의 깊이가 공존합니다. 그의 그림은 결국, 우리가 얼마나 ‘지금’을 보고 있는가를 묻는, 가장 세련된 질문이자 가장 단순한 대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