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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죽음, 돈-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상어는 죽었을 때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고, 반대로 살아있을 때는 죽은 것처럼 보인다.” -데미안 허스트- 

데미안 허스트는 영국 브리스톨 출신으로, 현존하는 현대 미술 작가 중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 명입니다. 1991년에 연 첫 개인전에서 포름알데히드 용액이 가득 차 있는 유리 진열장 안에 죽은 상어가 들어있는 작품을 설치하면서 굉장히 이슈가 됐었습니다. 데미안 허스트는 이 작품으로 당시 미술계와 대중에게 큰 충격을 주게 되는데, 바로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입니다.

데미안 허스트의 거대한 상어, 작품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에서는 불가능한 물리적인 죽음'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

영국에서 가작 파격적인 예술가들 ‘YBM’

영국 글로벌 광고 회사 ‘사치&사치’의 오너이자 슈퍼 컬렉터인 찰스 사치(Charles Saatchi)의 의뢰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당시 무명이었던 26살 데미안 허스트를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YBM 중에서도 최고의 스타 작가, 일명 ‘죽음의 신’ ‘죽음의 예술가’로 등극시켰습니다.

YBA는 Young British Artsist 의 각 앞글자를 딴 줄임말인데, 당시 영국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들을 뜻합니다. 이 YBA는 1988년 런던에서 처음으로 함께 전시를 시작했습니다. 여기 속한 아티스트들은 굉장히 개성이 넘치고 자유분방했습니다. 작업의 주제 또한 경계를 무너뜨리는 전위적이고 기발한 작업을 많았습니다.이 그룹에 소속된 아티스트 중에는 데미안 허스트와 마크 퀸, 트레이시 에민, 채프만 형제 등이 있는데요. 당시의 현대 미술이 다루던 주제보다는 좀 더 도발적인 성이나 폭력, 마약 같은 사회적인 문제들을 과감하게 다뤘기 때문입니다. YBA 그룹의 작가 대다수가 데미안 허스트와 마찬가지로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 출신이며, 당시 교수이자 세계적인 작가이기도 한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영향을 받아서 장르를 넘나드는 창의적인 작업이 이들의 공통점입니다.

YBA 아티스트들의 단체 사진
1988년 Freeze 쇼에서 이안 데이븐포트, 데미안 허스트, 안젤라 불럭, 비오나 래, 스테판 박, 안야 갈라시오, 세라 루카스, 게리 흄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작가, 셀프 브랜딩의 천재

포름알데히드가 가득찬 유리탱크에 잠겨 죽음을 상징하는 이 상어는 충격적이고 웅장합니다. 이 작품은 당시 5만 파운드, 약 1억 원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이때 포름알데히드 용액을 사용한 방부처리가 완벽하지 않아서, 시간이 지나면서 박제된 상어의 모양이 쪼그라드는 등 변형되었습니다. 이미 썩어버린 상어는 복원은 불가능 했기 때문에 새로운 상어로 교체하는 조건으로 이 작품이 다시 100억 원에 팔립니다. 이후 2005년에 한 경매에서 한화 약 120억 원에 낙찰되기도 했을 정도라고 하니 일각의 논란 속에서도 작품 가격은 계속해서 상승한 셈입니다.

데미안 허스트는 활동이 잦아지고 또 작품의 인기도 많아지면서 개인 매니저를 고용했는데요, 당시 주로 배우의 매니지먼트 쪽에서 유명하던 프랭크 던피라는 매니저를 통해서 직접 경매에 작품을 내고 거래했다고 하는데요. 이 매니저가 수익 창출에 아주 능해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이미지를 활용해서 다양한 아트 상품을 기획하고 제작했다고 합니다. 이런 과정을 봤을 때 데미안 허스트는 작업에만 몰두하기보다는 비즈니스에도 중점을 두는 행보를 보였고요. 또 작품을 제작할 때도 어시스트들을 두고 작업했는데, 지난 방송에서 다뤘던 앤디워홀의 대량 생산 스튜디오인 ‘팩토리 스튜디오’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이런 그는 상업적으로도 성공해 2020년에는 재산이 1억5천만 파운드, 2천373억 원으로 평가되면서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예술가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데미안 허스트가 159억어치 그림 불태운 까닭은
NFT로 발행한 그림의 원본 수천점 소각하는 데미안허스트

예술가를 넘어 상업활동으로 확장

1989년 여름, 골드스미스 대학 졸업파티에서 구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인디밴드가 연주를 시작하자 누군가 “너희가 비틀스 이후로 현존하는 최고의 그룹이야!”라고 외쳤습니다. 이것이 데미안 허스트와 블러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블러와 예술적으로 서로 교류하면서 지속적인 친분을 이어가던 데미안 허스트는 1995년에 발매한 블러의 새 앨범 ‘The Great Escape’의 수록곡인 <Country House>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게 됩니다. 그가 감독한 영상답게 곳곳에 해골이 배치되어있는 이 뮤직비디오는 1996년도 브릿 어워드 베스트 뮤직비디오 부문에 오르게 됩니다. 음악계는 데미안 허스트와 블러의 만남을 예술과 상업의 만남이라고 평가합니다. 90년대 후반 영국에서는 미국의 팝음악에 대적할 ‘영국의 팝’을 지향한 새로운 밴드 사운드인 ‘브릿팝’ 열풍이 일고 있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전통적인 예술가의 태도를 비판하는 ‘브릿아트’도 등장한것이죠. 브릿팝과 브릿아트는 모두 ‘상업적 성공’을 지향했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 상업적인 성격이 강했고, 이 둘의 만남은 큰 성공을 일으켰습니다.  

Blur – Country House (Official 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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