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을 앞서간 천재-엘 그레코(El Greco)
한때는 조롱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남자. 그의 이름은 엘 그레코El Greco)입니다. 스페인 회화의 이단아, 감각의 반란자, 종교적 환영을 그린 화폭의 괴물. 그는 전통과 규범을 박살내며 16세기 스페인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기괴하다”며 외면했죠. 그런 그가 오늘날 피카소, 잭슨 폴록, 마티스 등 수많은 현대 작가들의 우상으로 부활했습니다.
1541년 크레타 섬에서 태어난 그는 비잔틴 전통 속에서 이콘화를 배우며 성장했으며, 곧 베네치아와 로마로 향해 르네상스 거장들 곁에서 수련을 거칩니다. 티치아노의 색채, 틴토레토의 역동성, 미켈란젤로의 해부학적 이해를 섭렵한 그레코는 그러나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자신만의 화풍을 창조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스페인의 톨레도에 정착합니다. 거기서 그는 심하게 왜곡된 인체, 불길처럼 타오르는 색채,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극적인 조형을 선보이며 완전히 새로운 회화를 탄생시켰습니다.
엘 그레코의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폴로스 (Domenikos Theotokopoulos)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엘 그레코(El Greco)’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졌을까요? El Greco는 스페인어에서 쓰이는 정관사 ‘El’과 이탈리아어로 ‘그리스인(The Greek)’이라는 의미를 가진 ‘Greco’가 만난 합성어 입니다. 의미와 단어에 3개의 국가가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너무나 길고 어려웠던 그의 이름 때문에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그는 그리스에서 온 이방인 도메니코스라는 사람에게 그저 ‘그리스 사람’ 정도로 많이 불렸습니다
16세기 사람들에겐 너무 파격적이였던…
엘 그레코의 대표작인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성 마우리시오의 순교>, <성 요한의 환영> 등은 모두 당대의 상식을 뛰어넘은 구도와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인체는 늘어나 있고, 하늘은 뒤틀려 있으며, 인물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있습니다. 그는 신체 비율을 과감하게 왜곡했고, 신비롭고 슬픈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인물을 좁고 긴 실루엣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화풍때문에 그림의 의뢰인은 처음 계약한 액수보다 훨씬 적은 보수만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엘 그레코는 그림에 대한 어떤 수정도 하지 않을 조건으로 적은 보수를 받아드렸습니다. 이는 예술적 자유와 자존심을 중시한 그의 성격을 볼 수 있는 일화입니다.
그를 다시 부활시킨 20세기 이단아들
엘 그레코는 죽은 뒤에도 수백 년 동안 잊혀졌습니다. 하지만 19세기 말, 그가 다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프랑스의 상징주의 화가들, 독일 표현주의, 그리고 피카소까지, 그의 왜곡된 인체와 초현실적 구도는 시대를 앞선 혁명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피카소는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제작할 때 엘 그레코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고, 잭슨 폴록은 엘 그레코의 작품을 베낀 드로잉이 60여개에 이를만큼 열성적인 팬이였습니다. 그의 비뚤어진 천재성은 마침내 ‘미친 화가’에서 ‘예언자’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