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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HAPPY TO SERVE YOU”-뉴욕의 상징, 안소라컵

뉴욕의 아침을 떠올릴 때, 노란 택시와 바쁜 출근길만큼이나 익숙한 파란색 종이컵이 있습니다. 바로 ‘안소라 컵(Anthora Cup)’.

그리스 문양과 함께 새겨진 문구 “WE ARE HAPPY TO SERVE YOU”는 뉴욕 거리 곳곳에서 커피 한 잔의 온기를 나누던 시절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이 작은 종이컵이 어떻게 전 세계가 주목하는 디자인 아이콘이 되었을까요?

One of the landscapes symbolizing New York "Greek pattern coffee cup" was  born is the history of being born? - GIGAZINE

이민자들을 위한 디자인

안소라 컵은 1963년, 헝가리 출신 유대인 디자이너 레슬리 벅(Leslie Buck)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레슬리 벅은 1922년 9월 20일,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에 속했지만 현재는 우크라이나 영토인 후스트에서 라슬로 뷔흐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라슬로는 유대인이었고,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 10대 청소년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나치에 의해 살해당했고, 그와 그의 동생 유진은 아우슈비츠와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었습니다.

레슬리와 유진 두 형제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미국으로 피난을 갔고, 전쟁 후 뉴욕에 정착했습니다.  그는 종이컵 제조업체 ‘셰리 컵 컴퍼니(Sherri Cup Co.)’에서 일하며, 그리스계 이민자들이 운영하던 뉴욕의 다이너들을 위한 맞춤형 디자인을 구상했습니다.

컵의 이름인 ‘안소라(Anthora)’는 고대 그리스 항아리 ‘암포라(Amphora)’의 오기로, 그리스 이민자들의 자긍심과 전통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컵에는 그리스 전통 문양과 파란색-금색의 대비, 그리고 정중하면서도 따뜻한 문구 “WE ARE HAPPY TO SERVE YOU”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 문장은 단순한 서비스 정신을 넘어, 이민자들이 세운 뉴욕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말이 되었습니다.

Leslie Buck, designer of NYC coffee cup, dies - Newsday
안소라컵을 디자인한 레슬리 벅 (Leslie Buck)

영화와 드라마를 점령한 안소라 컵

안소라 컵은 할리우드의 ‘커피 연출’ 공식처럼 등장합니다. 심지어 뉴욕시청과 경찰서에서도 일상적으로 쓰였을 만큼, 뉴욕의 공적 공간에 깊이 스며든 상징이었습니다.

<로 앤 오더>, <로 앤 크리미널 인텐트>, <프렌즈>, <블루 블러드> 등 수많은 드라마에서 형사, 기자, 회사원들의 손에 들려진 컵이 바로 이 안소라입니다.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아메리칸 싸이코>, <오션스 8> 같은 영화에도 등장해, 뉴욕이라는 배경에 리얼리티를 부여했습니다.

안소라 컵은 단순한 일회용품을 넘어, 하루 평균 수백만 명의 뉴요커들이 손에 쥐던 일상의 일부였습니다. 특히 1990년대 중반엔 연간 5억 개 이상이 판매되며, 뉴욕타임스로부터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커피 컵”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스타벅스 같은 대형 체인의 부상과 텀블러 사용 증가로, 안소라 컵의 자리는 위협받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뉴욕타임스는 안소라 컵을 “멸종 위기에 처한 유물”이라 불렀습니다.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세트 크레딧 저스트 자레드
영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에 등장하는 안소라컵
머펫이 맨해튼을 점령하다
1984년작 ‘머펫의 맨해튼을 점령하다’에 나오는 안소라컵
브루클린 99 안토라
2015년 <브루클린 나인-나인> 속 안소라컵

현대미술관에 전시된 종이컵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안소라 컵을 도자기 제품으로 재현해 디자인 컬렉션에 포함시켰습니다. 종이컵이 박물관에 전시된다는 사실 자체가 ‘디자인’의 정의를 뒤흔드는 사건이었습니다. 이제 안소라 컵은 단지 커피를 담던 용기가 아니라, 뉴욕의 감성과 정체성을 담은 문화 유물로 자리 잡게 됩니다.

현재는 모마 디자인스토어를 비롯한 온라인 편집샵에서도 세라믹 버전의 안소라 컵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아침 출근길의 감성을 집으로 들여오는 셈이죠.

New York Coffee Cup - Blue – MoMA Design Store
MOMA 디자인 스토어에서 판매중인 도자기 안소라컵

종이컵 하나로 뉴욕을 소환하다

오늘날, 안소라 컵은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미국 내 복고풍 열풍과 함께, 이 컵은 다시금 ‘힙한’ 아이템으로 재조명되고 있으며, 뉴욕을 상징하는 굿즈이자 레트로 감성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컵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는 기꺼이 당신을 위해 봉사합니다.” 단지 커피가 아닌, 도시의 역사와 온기를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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