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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착한 예술만 살아남는 시대? 필립 거스턴의 'KKK 시리즈' 전시 연기 사태

재개된 전시 – ‘우여곡절’의 끝과 ‘새로운 문법’의 시작

강력한 비판 여론에 직면한 미술관들은 당초 4년 연기하려던 계획을 수정하여 2022년부터 순차적으로 전시를 재개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그림만 다시 건 것이 아니었습니다.

2022년 보스턴 미술관에서 시작된 전시에는 이전과 다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전시장 입구에는 작품의 폭력성을 경고하는 문구가 배치되었고, KKK 시리즈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관객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별도의 우회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큐레이터들은 흑인 예술가, 인권 운동가, 심리학자들의 코멘터리를 전시에 대거 포함했습니다. 거스턴의 시각뿐만 아니라, 그 이미지를 바라보는 현대 유색인종의 고통스러운 시선을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복합적 맥락화’를 시도했습니다. 전시는 단순히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는 이 고통스러운 역사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의 장으로 변모했습니다.

Philip Guston: Artists slam decision to postpone exhibition of painter's KKK  paintings | CNN

관객은 왜, 어떻게 불편해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거스턴이 ‘인종차별에 맞선 작가’라는 사실을 알아도, 시각적 충격은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거스턴의 KKK 시리즈는 만화 같은 화풍(Cartoonish style)으로 그려졌습니다. 이 ‘귀여운(?)’ 화풍으로 인종학살의 상징인 후드를 쓴 인물이 드라이브를 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흑인 관객이나 인종차별 트라우마가 있는 이들에게 ‘폭력의 희화화’로 다가올 위험이 컸습니다.

미술관은 전시장 내에 ‘감정적 안전 구역(Emotional Safety Zone)’과 ‘트라우마 상담 전문가의 도움’을 안내하는 문구를 배치했습니다. 실제로 일부 관객은 “작가의 의도가 훌륭하더라도, 거대한 캔버스에 가득 찬 KKK의 형상을 매일 마주해야 하는 유색인종 직원들과 관객의 정서적 노동(Emotional Labor)은 누가 보상하느냐”는 실질적인 불편함을 제기했습니다.

Artists Speak against the Postponement of 'Philip Guston Now' | Frieze

예상외 압도적 지지

우려와 달리 전시는 기록적인 인파를 동원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미술관은 거스턴이 젊은 시절 인종차별 반대 벽화를 그리다 KKK에게 파괴당했던 개인사, 유대인 이민자로서 겪은 소외감을 아주 상세히 전시했습니다. 이를 본 관객들은 거스턴의 후드를 ‘가해자의 상징’이 아닌, ‘우리 모두의 내면에 숨은 공모자(Accomplice)의 얼굴’로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비평가와 젊은 관객들은 “예술이 우리를 편안하게만 해준다면 그것은 장식품일 뿐”이라며, 거스턴의 전시 연기 소동 자체가 오히려 작품의 생명력을 증명했다고 평가했습니다.

Untitled (1969) - Philip Guston Viewing Room - Hauser & Wirth

불편함을 넘어선 대화

2022년 전시는 관객들이 단순히 ‘그림이 보기 싫다’고 느낀 것이 아니라, “이 그림을 2020년대의 인종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읽어내야 안전하고도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한가”를 고민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술관은 ‘검열’ 대신 ‘더 많은 설명’을 선택했고, 관객은 그 노력을 통해 거스턴의 진심에 가닿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거스턴의 ‘KKK 시리즈’ 전시 연기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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