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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착한 예술만 살아남는 시대? 필립 거스턴의 'KKK 시리즈' 전시 연기 사태

필립 거스턴(Philip Guston)의 <KKK 시리즈>는 1960년대 말에 탄생했지만, 이 작품이 진정으로 세상의 시험대에 오른 것은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2020년이었습니다. 왜 현대의 미술관들은 이토록 귀여운 반세기 그림을 두려워하며 전시실 문을 걸어 잠갔을까요?

Philip Guston's KKK Paintings Must Be Shown – But Not as Pawns in the  Culture Wars - ArtReview

1960년대의 저항: 추상을 찢고 나온 현실

1960년대 말, 미국은 민권 운동과 반전 시위로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추상 화가였던 거스턴은 “세상은 불타는데 나는 빨강과 분홍의 조화나 고민하고 있다니!”라며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1968년경부터 KKK 후드를 쓴 인물들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인종주의를 옹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백인 사회의 암묵적 동조와 일상에 숨어있는 일상의 평범한 악의 얼굴을 폭로하기 위한 처절한 저항이었습니다.

Philip Guston then - The New Criterion

2020년의 공포, BLM 운동과 미술관의 ‘패닉’

사건은 2020년 9월에 터졌습니다. 워싱턴 국립미술관, 테이트 모던 등 4개 주요 미술관은 예정된 거스턴의 순회 전시를 2024년까지 연기한다고 발표했습니다. 2020년 5월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Black Lives Matter(BLM)’ 운동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술관 측은 “KKK라는 상징이 주는 트라우마가 관람객들에게 직접적인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Philip Guston's daughter on his Klan paintings: 'They're about white  culpability – including his own' | Painting | The Guardian

예술의 자율성 vs 사회적 감수성

전시 연기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전 세계 2,000명이 넘는 예술가, 큐레이터, 비평가들이 반대 서명에 참여했습니다. 그들이 주장한 핵심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거스턴의 KKK 후드는 인종주의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악(Banality of Evil)’을 폭로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예술가들은 “그림 속 인종차별주의자가 도넛을 먹고 차를 모는 일상적인 모습은 우리 내부의 위선을 찌르는 것인데, 미술관은 이를 단순한 ‘혐오 표현’으로 격하시켰다”라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미술관의 존재 이유는 어려운 작품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맥락’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예술가들은 “미술관이 관객의 지적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논란이 두려워 교육적 소임을 저버린 채 ‘자기 검열’이라는 비겁한 선택을 했다”고 일갈했습니다.

불편한 이미지를 제거하는 행위가 반복된다면, 앞으로 사회적 아픔을 다루는 모든 예술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했습니다. 이는 예술이 가진 치유와 비판의 기능을 스스로 잘라내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제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이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2편을 기다려 주세요.

Philip Guston Now - John McDon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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