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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비엔날레를 흔든 '분홍 복면', 푸시 라이엇(Pussy Riot)의 저항

베니스의 고요를 깨운 강렬한 저항의 소리

세계 최고 권위의 예술 축제인 베니스 비엔날레가 한창인 이탈리아 베니스의 지아르디니(Giardini) 공원. 2026년 5월 6일, 이곳 러시아 파빌리온 앞은 평소와 다른 긴장감과 열기로 가득 찼습니다. 러시아의 페미니즘 펑크 록 컬렉티브 ‘푸시 라이엇(Pussy Riot)’과 우크라이나의 급진적 여성 운동 단체 ‘페멘(FEMEN)’ 소속 활동가 약 50명이 연대하여 기습적인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죠.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처음으로 열린 이번 비엔날레에서, 이들은 굳게 닫힌 러시아 파빌리온의 문을 투쟁의 현장으로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푸시 라이엇, 예술과 정치를 잇는 급진적 게릴라

이날의 주인공인 푸시 라이엇은 2011년 모스크바에서 결성된 이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저항 예술 집단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들은 화려한 색상의 복면(발라클라바)을 쓰고 예기치 못한 공공장소에 나타나 펑크 공연을 펼치는 ‘게릴라 방식’으로 유명하죠.

이들에게 예술은 단순히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권력에 균열을 내는 무기입니다.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권리 옹호, 그리고 푸틴 정권의 독재 체제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은 이들 활동의 핵심입니다.

창립자 나데즈다 톨로코니코바와 저항의 역사

푸시 라이엇의 상징적 인물인 나데즈다 톨로코니코바(Nadezhda Tolokonnikova)는 철학을 전공한 예술가로, 2012년 모스크바 대성당에서 푸틴 퇴진을 요구하는 ‘펑크 기도’ 퍼포먼스를 주도했다가 2년간 복역하며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수감 중에도 단식 투쟁을 통해 러시아 교도소 내 인권 실태를 폭로했던 그녀는, 출소 후에도 미디어 플랫폼을 설립하는 등 예술과 언론을 넘나들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베니스 시위 역시 그녀가 일관되게 고수해온 ‘행동하는 예술’의 연장선에 있었죠.

Pussy Riot Member Labeled as 'Foreign Agent' by Russia
푸시 라이엇의 창립자 나데즈다 톨로코니코바(Nadezhda Tolokonnikova)

맨몸으로 독재에 맞서는 우크라이나의 전사들, 페멘(FEMEN)

이번 시위에 힘을 보탠 페멘(FEMEN)은 2008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결성된 급진적 여성 인권 단체입니다.

이들은 가부장제와 독재, 종교적 억압에 저항하기 위해 화관을 쓰고 상의를 탈의한 채 몸에 메시지를 적고 시위하는 ‘섹스트레미즘(Sextremism)’ 전술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성의 신체를 성적 대상이 아닌 투쟁의 도구로 전환시킨 이들은, 이번 베니스에서도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며 독재 권력을 향해 가장 원초적인 거부의 의사를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Femen stage topless protest as Pope visits Strasbourg - France 24

전쟁에 반대하는 신체, 그리고 예술적 연대

시위대는 ‘러시아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색 액체를 뒤집어쓰거나, 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퍼포먼스를 통해 파빌리온의 침묵을 깨뜨렸습니다. 이들은 “러시아 예술은 국가의 선전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외치며, 전시가 중단된 파빌리온 자체를 권력의 실패를 증명하는 조형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푸시 라이엇의 복면과 페멘의 맨몸이 만난 이 순간은, 국경을 넘어선 여성 예술가들의 연대가 국가 폭력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자리였습니다.

Russia outlaws protest band Pussy Riot, labels it 'extremist'

닫힌 문 너머로 던지는 질문

푸시 라이엇과 페멘의 이번 시위는 예술의 존재 이유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국가가 전쟁을 일삼을 때 예술가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을 보여준 셈이죠. 그들이 베니스의 햇살 아래서 뿜어낸 에너지는 단순히 시각적인 충격을 넘어 억압받는 모든 이들을 향한 연대의 메시지로 확장되었습니다.

굳게 닫힌 러시아 파빌리온의 문은 열리지 않았지만, 그 앞을 수놓은 저항의 물결은 이미 전 세계인의 마음속에 가장 강렬한 ‘비엔날레 전시’로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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