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욕망이 차려진 기괴한 연회: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요리책 《갈라의 저녁 식사》
식탁 위로 옮겨진 무의식과 초현실의 세계
20세기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거장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는 녹아내리는 시계, 왜곡된 신체, 기묘한 환영을 통해 인간의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캔버스 위에 집요하게 그려냈습니다.
그러나 그가 탐닉한 것은 단지 캔버스 위의 유화 물감만이 아니였죠.
달리는 “나는 내가 먹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내가 만드는 것은 모른다”라는 유쾌한 격언을 남겼을 만큼, 미식과 음식이라는 매개체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1973년, 68세의 나이가 된 달리는 자신의 유일무이한 예술적 영감이자 아내였던 갈라(Gala)에게 헌정하는 기괴하고도 매혹적인 요리책 《갈라의 저녁 식사(Les Dîners de Gala)》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132개의 레시피, 연극적인 미학으로 차려진 미식의 전당
단 500부 한정판으로 초판 발행되었던 《갈라의 저녁 식사》는 단순한 레시피 북이 아닌, 그 자체로 완벽한 하나의 ‘초현실주의 미술관’입니다.
달리는 어린 시절 6세 때부터 요리사가 되기를 꿈꿨다고 회상할 만큼 미식에 진심이었습니다. 그는 프랑스 당대 최고급 레스토랑인 ‘라세르(Lasserre)’, ‘라 투르 다장(La Tour d’Argent)’의 셰프들과 협업하여 총 132개의 실제 조리 가능한 레시피를 수록했습니다.
책은 총 12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계란과 해산물’, ‘육류’, ‘사냥감과 조류’, 그리고 달리 특유의 성적 상징성이 돋보이는 ‘아프로디지악(Aphrodisiacs·성욕 촉진제)’ 섹션 등으로 섬세하게 나뉘어 있습니다. 각 장마다 달리가 직접 그린 화려한 콜라주와 유화, 그리고 기묘하게 연출된 연회 사진들이 수록되어 독자의 시각과 미각을 동시에 자극합니다.

“칼로리와 다이어트는 가라”: 식욕과 욕망의 쾌락주의
《갈라의 저녁 식사》 서문에서 달리는 단호하고도 명확한 경고를 남깁니다.
“이 책은 오직 식욕의 기쁨에 전념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칼로리를 계산하고 유쾌한 식사를 화학적 형태의 고통으로 바꾸는 다이어트주의자들과 정통성 없는 영양학자들은 이 책을 즉시 덮어라.”
그에게 음식은 단순한 영양 공급원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매개체였습니다.
피를 흘리는 듯한 생선 요리, 랍스터를 높게 쌓아 올린 탑, 수풀 사이에 놓인 거대한 조류 요리처럼 책 속에 등장하는 비주얼은 그의 대표작 《기억의 지속》 속 풍경이 식탁 위로 그대로 옮겨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특히 단단한 껍질 속에 부드러운 속살을 숨긴 갑각류에 매료되었던 그는, 음식을 씹고 삼키는 행위야말로 작품을 내면화하는 가장 완벽한 방식이라고 믿었습니다.

40여 년 만에 돌아온 초현실주의 식탁
오랫동안 희귀본으로 남아 수천 달러에 거래되던 이 책은 2016년 미술 전문 출판사 타셴(Taschen)을 통해 원본 그대로 재발간되며 다시금 주목받았습니다.
특히 이 책의 ‘해산물(Les 10 recettes de la Mye)’ 파트에 수록된 대표적인 레시피 중 하나인 ‘새우 파르페(Prawn parfait)’는 디저트의 상징인 ‘파르페’와 짭조름한 해산물의 기이한 결합을 선보입니다. 짓깬 새우 살과 우유, 우유 크림, 달걀노른자, 마늘, 레몬즙을 섞어 냉동실에서 차갑게 얼려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연출한 뒤, 상단에는 거대한 집게발을 든 랍스터와 새우 탑을 쌓아 올렸죠. 여기에 따뜻하게 구운 치폴라타 소시지 비스킷을 곁들여 먹도록 설계해 차가움과 뜨거움, 디저트와 요리의 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오늘날 세계적인 셰프들이 접시 위에 스토리텔링을 입히고 오감을 자극하는 독창적인 요리를 선보이는 모습은, 이미 50년 전 달리가 조망했던 초현실주의 식탁과 닮아있죠.
지루한 일상에 색다른 자극이 필요하다면, 달리가 차려낸 이 유쾌하고 기괴한 연회 속으로 들어가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갈라의 저녁 식사》 주요 요약
- 서명: 《갈라의 저녁 식사 (Les Dîners de Gala)》
- 저자: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í)
- 발간: 1973년 (500부 한정판), 2016년 타셴(Taschen) 재발간
- 내용: 12개 장, 132개 실제 레시피, 달리 친필 일러스트 및 콜라주 수록
- 특징: 다이어트와 실용성을 거부하는 미식 쾌락주의, 음식으로 구현한 초현실주의 세계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