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미술관 ② 지평선 위로 솟은 미래, 프랑스 루마 아를 (Luma Arles)
고대 로마의 원형 경기장과 고흐가 사랑한 노란 밤의 카페로 기억되던 남프랑스의 작은 도시 아를(Arles). 이제 이곳은 건축 거장 프랑크 게리(Frank Gehry)가 빚어낸 은빛 타워와 함께 현대 예술의 가장 뜨거운 심장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설립자 마야 호프만, 예술을 향한 유전적 사명감
루마 아를의 설립자마야 호프만(Maja Hoffmann)은 단순한 자산가가 아닌, 대를 이은 예술 후원 가문의 상속자입니다.
그녀는 세계적인 제약 회사 ‘에프 호프만 라 로슈(F. Hoffmann-La Roche)’ 창업자의 증손녀입니다. 로슈 가문은 수십 년간 스위스 바젤을 중심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으며, 동시에 유럽 예술계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불릴 만큼 강력한 후원을 지속해왔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루카스 호프만(Lukas Hoffmann)은 세계자연기금(WWF)의 공동 설립자로, 환경 보존과 예술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마야는 어린 시절을 아를 근교의 습지 ‘카마르그(Camargue)’에서 보내며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는 가치를 몸소 체험했습니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예술계에 투신한 그녀는 테이트(Tate), 쿤스트할레 바젤 등 세계 유수 미술관의 이사를 역임하며 안목을 쌓았습니다. 2004년 자신의 자녀 이름(Lucas와 Marina)을 딴 루마 재단(Luma Foundation)을 설립하며 개인적 차원의 거대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잊힌 철도 기지에 심은 르네상스
마야 호프만에게 아를은 ‘제2의 고향’입니다. 그녀는 쇠락해가는 이 고대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사재 약 1억 5,000만 유로(약 2,000억 원) 이상을 투입했습니다.
- 철도 기지의 변신: 19세기 철도 차량기지였던 ‘파르크 데 아틀리에(Parc des Ateliers)’ 부지는 오랫동안 방치된 흉물이었습니다. 마야는 이곳을 매입해 프랑크 게리에게 설계를 맡겼고,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경제 구조 자체를 문화 예술 중심으로 재편하고자 했습니다.
- 살아있는 실험실: 그녀는 이곳이 “예술가들이 단지 전시만 하는 곳이 아니라, 현장에서 연구하고 생산하며 지역민과 교감하는 생태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3. 프랑크 게리의 건축: 아를의 바위산과 고흐의 붓터치
단지의 중심에 선 ‘더 타워(The Tower)’는 프랑크 게리 건축 미학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 빛의 변주: 11,000개의 스테인리스 스틸 패널로 뒤덮인 외관은 아를의 강렬한 햇살에 반응하며 시시각각 색을 바꿉니다. 이는 빈센트 반 고흐가 이곳에서 집착했던 ‘빛의 움직임’과 ‘거친 붓터치’를 건축적으로 재해석한 결과입니다.
- 지형적 오마주: 타워 하단의 원형 유리 구조물인 ‘더 드럼(The Drum)’은 아를의 로마 원형 경기장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들쭉날쭉한 타워의 형상은 아를 인근의 님프(Nymphes) 바위산을 닮아 있습니다.

‘아틀리에 루마(Atelier Luma)’의 지속가능성
루마 아를의 진정한 가치는 타워 내부의 화려함보다 연구실인 ‘아틀리에 루마’에서 빛납니다. 이곳에서는 카마르그의 소금, 해조류, 해바라기 줄기 등을 연구하여 건축 자재와 가구로 만듭니다. 이는 환경운동가였던 아버지의 유산과 예술을 결합한 마야 호프만식 ‘미래형 후원’의 결정체입니다. 또한 이곳의 전시장의 인테리어와 가구들이 지역의 폐기물이나 천연자원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며, 독자들은 진정한 ‘럭셔리’란 자연과의 공존임을 깨닫게 됩니다.

현재의 시선, “The Core of Creativity”
현재 루마 아를은 단지 내 7개의 대형 산업 건물을 개조한 전시실에서 현대미술의 거장들과 신진 작가들의 실험적 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마야 호프만은 이곳을 통해 아를을 ‘남프랑스의 빌바오’를 넘어선, 전 세계 창의적 인재들이 모여드는 ‘싱크탱크’로 만들고 있습니다.

[Travel Info]
- 위치: 35 Avenue Victor Hugo, 13200 Arles, France
- 건축: 프랑크 게리 (Frank Gehry), 안나벨 셀도프 (Annabelle Selldorf)
- 특징: 세계적인 제약 그룹 ‘로슈’ 가문의 상속자 마야 호프만이 설립한 예술 단지
- 팁: 타워 내부의 ‘드럼’ 카페에서 아를의 햇살을 받으며 커피 한 잔을 즐긴 후, 벨기에 조경가 바스 스메츠(Bas Smets)가 설계한 공원을 산책하는 코스를 추천합니다.


